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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날은 2001년 2월 4일이었다. 이날 김씨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고교생 A(당시 17세)양을 불러낸 뒤 자신의 차량에 태워 나주시 남평읍에 있는 드들강으로 향했다. 그는 차량 안에서 반항하는 A양을 억압한 뒤 강간했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A양을 차량 밖으로 끌어내 드들강 물속에 넣어 숨지게 한 잔인한 수법이었다.
김씨는 A양의 시신을 물에 내버려둔 채 현장을 벗어났고 경찰 수사 초기에 용의자가 검거되지 않으며 사건은 장기미제로 남게 됐다. 당시 경찰은 A양의 신체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을 발견했지만 DNA가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해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사건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2012년 대검찰청의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온 이후였다. A양의 체내에서 검출된 용의자의 체액이 광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김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재수사를 진행해 김씨를 송치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사건은 다시 묻히는 듯했지만 2015년 나주경찰서로 부임한 한 수사과장의 주도로 재수사 팀이 꾸려지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전담팀은 A양의 가족과 김씨의 당시 여자친구 등 주변인을 만나 진술을 확보하고 A양의 소지품도 다시 확인하며 증거를 보강, 수집했다. 여기에 ‘태완이법’(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의 결과로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사라지며 수사기관이 조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사건을 다시 넘겨받은 검찰은 “원점 재검토”를 결정하고 경찰과 합동 수사팀을 꾸렸다. 무혐의 처분이 된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수사 과정에서는 김씨가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정황과 동료 수감자에게 범행 사실을 말한 것 등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후 검찰이 김씨를 기소하며 드들강 사건의 피고인은 15년 만에 법정에 서게 됐다.
◇치밀하게 만든 알리바이, 조작 사실 드러나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A양을 강간하고 살인한 적이 없으며 성관계한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사건 당일 오전에 당시 여자친구 등과 전남 강진에 있는 외조모 집에 방문했기에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법의학 감정 결과와 김씨가 범행을 은폐한 정황 등을 언급하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양의 시신에서 공격에 방어하거나 제압당할 때 발생하는 상처가 다수 발견됐고 피해자의 체내에서 나온 체액 등을 실험한 결과 김씨가 A양을 강간한 직후 살해한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김씨가 교도소 개인함에 보관해오던 사진 7장에 대해서도 그가 기소될 것을 대비해 범행 이후 행적을 조작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씨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고의로 사진을 촬영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씨의 동료 재소자였던 B씨의 증언이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B씨는 법정에서 “(김씨가) 사건 관련 진정·소송 과정을 자주 물었고 이 사건에 대해 모두 털어놓고 상담했다”며 사진 또한 알리바이를 위해 찍은 것이라 말했다고 증언했다. B씨는 김씨의 보관함에 있는 사진 7장을 제보한 인물로 검찰이 교도소를 압수수색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약 5개월간 사건을 심리한 뒤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죄증을 인멸하기 위해 피해자의 옷을 벗긴 뒤 시신을 물속에 방치하고 행적 조작을 시도했다”며 “수사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자 다른 재소자와 예상 신문사항 및 답변을 예행 연습하기까지 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17세였던 피해자는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됐다”며 “유족들은 16년간 피해자를 잃은 고통과 슬픔을 떠안으며 살아야 했고 피해자의 아버지는 이후 괴로워하다가 안타깝게 숨졌다”고 밝혔다.
김씨와 검찰 측은 쌍방 항소했고 2심 재판부가 이를 기각한 뒤 대법원도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형이 확정됐다. 이후 김씨는 B씨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고 무고한 혐의로 각각 기소돼 벌금형과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