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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최 씨는 중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최 씨의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강간 미수 직후 최 씨 아버지 집에 침입해 협박한 노 씨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가 적용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성폭행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오히려 더 무거운 형량을 받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피해자는 검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모욕을 견뎌야 했다.
최 씨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최 씨에게 “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재판부도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되묻는 등 최 씨에게 심각한 2차 가해를 했다. 당시 언론도 이 사건을 두고 ‘키스 한 번에 벙어리’, ‘혀 자른 키스’ 등의 제목으로 남성이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호도했다.
구속 수사를 받은 최 씨는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정신적·신체적으로 피폐해져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죄인이라는 ‘주홍 글씨’를 달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디며 산 인생이었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지난 1995년 법원 100년사를 정리해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영원히 가슴에 멍에를 지고 살아 가야 할 것 같던 최 씨에게 우리 사회의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 열풍은 전기가 됐다. 지난 2018년 최 씨가 한국여성의전화에 재심 청구와 관련해 문의를 하면서, 피해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최 씨는 사건 후 56년 만인 지난 2020년 한국여성의전화 지원으로 자신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부산지법은 최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부산고법 역시 최 씨의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한 항고를 기각했다. 최 씨는 재항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약 2년 간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최 씨와 그의 조력자들인 288개 여성단체는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 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이날 최 씨를 필두로 매일 대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진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