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1년경 35조원 규모로 성장할 혈우병 치료제 시장이 두 유전자 치료제의 등장으로 요동칠 전망이다. 1일 업계에서는 높은 약가로 인해 확장성이 비교적 더딜 수 있지만, 단회(원샷) 투여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가 결국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스위스 로슈나 미국 화이자 등 글로벌제약사(빅파마)도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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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개발성공한 1세대 바이오벤처들
혈우병은 출혈이 멈추지 않는 질환으로 크게 A형과 B형 혈우병으로 나뉜다. A형 혈우병은 전체 혈우병 환자의 약 70%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12가지 혈액응고 인자 중 8번(Ⅷ) 혈액응고 인자가 부족할 때 발병한다. B형 혈우병은 9번(Ⅸ) 혈액응고 인자가 부족할 때 나타난다. A형 혈우병 환자가 B형 혈우병보다 국가별로 5~8배가량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유럽의약품청(EMA)이 호주 CSL베링과 유니큐어가 공동 개발한 B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헴제닉스’(성분명 에트라나코진 데자파보벡)를 조건부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승인받은 지 3개월 만에 헴제닉스가 EU 시장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헴제닉스는 미국에서 1회 투여당 350만 달러(한화 약 47억원) 약가를 책정받았으며, 현재까지 최고가의 의약품으로 기록된 상태다.
미국 바이오마린이 개발한 최초의 A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록타비안’(성분명 발록토코진 록사파보벡)도 지난해 6월 EMA로부터 조건부 승인받았다. 이 약물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심사 관련 결론도 내달 말일까지 나올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11월로 예정됐던 록타비안 관련 FDA 자문위원회 회의 소집 계획이 취소되면서, 허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행크 푹스 바이오마린 연구개발 부문 총책임자는 “FDA 내부 인력만으로 임상 결과나 약효 면에서 뚜렷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을 때 자문위를 소집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이미 관련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혁신적인 신약인 록타비안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초의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이끈 바이오마린과 유니큐어 등은 1997~1998년 사이 각각 미국과 유럽에서 탄생한 1세대 바이오벤처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바이오마린과 유니큐어는 각각 27일 기준 시가 총액이 189억7000만 달러(한화 25조원)와 9억3400만 달러(한화 1조2360억원)에 달한다. 또 헴제닉스를 개발에 참여한 CSL베링의 모회사인 CSL리미티드는 호주 주식시장에 상장됐으며, 이날 기준 시가총액이 1431억3000만 호주 달러(한화 약 127조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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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시장 2031년 35조원 이상 ...빅파마도 임상 박차
세계 혈우병 시장은 약 17조원, 이중 국내 시장은 약 23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A형 혈우병 환자 대상 로슈의 항응고제 ‘헴리브라’(성분명 에미시주맙)나 B형 혈우병 환자 대상 미국 화이자 ‘베니픽스’(성분명 노나코그알파) 등 유전자재조합 기반 약물들이 널리 쓰인다. 이들은 모두 1주~1달마다 1회씩 평생 투여받아야 한다.
이와 달리 유전자 치료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연 원샷 투여로 혈우병을 완치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록타비안은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5’에 8번 응고인자의 유전자 등을 넣은 정맥주사형 약물이다. 1회 투여하면 부족했던 8번 응고인자가 계속 생성된다. 헴제닉스 역시 같은 방식으로 9번 응고인자의 유전자를 전달하도록 설계됐다. 록타비안과 헴제닉스는 임상 3상 등 연구에서 연간 혈장 수혈 횟수를 각각 99%, 64%씩 감소시키는 효과가 나타났다.
국내 혈우병 치료제 개발업계 관계자는 “록타비안이나 헴제닉스 등이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만큼 5년 이상 장기 안전성 관련 데이터를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며 “높은 약가로 인해 당장 널리 보급될 순 없겠지만, 보험이나 국가 지원 등의 논의를 거쳐 유전자 치료제 기반 약물의 시장성은 점점 커져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혈우병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1년 128억 달러(당시 한화 약 14조6432억원)이며, 연평균 7.5%씩 성장해 오는 2031년 269억 달러(한화 약 35조 4864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을 뚫기 위해 로슈, 화이자 등도 적극 나서고 있다. 로슈는 스파크 테라퓨틱스를 인수하며 확보한 ‘RG6357’의 A형 혈우병 대상 임상 1/2상을, 화이자도 상가모 테라퓨티스로부터 기술도입한 ‘PF-07055480’의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양사는 공동으로 B형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후보 ‘PF-06838435’의 임상 3상도 수행하고 있다.
한편 국내 개발사 중에선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없다. 다만 GC녹십자(006280)가 ‘그린진에프’(성분명 베록토코그알파) 등 유전자재조합 기반 혈우병 치료제 4종을 확보하고 있으며, JW중외제약은 로슈의 헴리브라의 국내 유통을 담당하는 중이다. 이밖에도 티움바이오(321550)는 지난해 7월 기존 치료제 대비 반감기를 6~7배 늘린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재조합 기반 혈우병 신약 후보물질 ‘TU7710’의 국내 임상 1상을 신청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