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정부인사 등 17명 사망 피해
전 대통령은 당시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을 순방 중이었다. 버마는 첫 방문지였다. 이날 전 대통령의 첫 일정은 오전 10시 30분 아웅산 장군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5분전 북한의 폭탄이 폭발했다.
|
사건의 배후는 곧 드러났다. 북한의 공작원은 모두 3명이었는데 이 중 신기철은 체포 과정에서 총격전으로 사살됐다. 이 때 미얀마 측에서 다시 3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테러범 외면한 北
붙잡힌 김진수와 강민철도 부상 정도가 심했다. 수류탄을 쓰려다가 김진수는 한쪽 눈을 실명했고 강민철은 왼팔을 잃었다. 안전핀을 뽑는 순간 수류탄이 터지면서 두 사람 모두 중상을 입은 것이다.
김진수는 수사 과정에서 단 한 마디도 진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4년 사형됐다. 그나마 수사에 협조한 강민철은 무기징역으로 수감을 받다가 2008년 중증 간질환으로 옥사했다. 강민철은 평소 한국에 오고 싶어했으나 테러범이라는 이유로 송환이 거부됐다.
테러를 지시한 북한도 이들과 거리를 뒀다. 북한은 강민철이 북한 사람이 아니며 전 대통령을 노린 ‘남조선 인민’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정권은 테러범과 약속한 귀환 루트에 배를 준비해놓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구출할 계획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군사 충돌 위기까지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다. 순방을 전면 취소한 전 대통령은 바로 서울로 귀국했다. 전 대통령을 노렸던 테러인 데다 대한민국 정부 고위급 인사 다수가 사망한 사건이어서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러나 남북간 군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이 뜯어말린 때문이다. 1983년은 3차 대전의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냉전 시기였다. 아웅산 테러 사건 한 달 전인 9월 1일 소련의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으로 미소 관계는 냉각되고 있었다.
다만 미소 모두 전쟁까지는 고려치 않았다. 군비를 늘려가며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북한이 돌출 행동을 벌인 것이다. 확전을 경계했던 미국이 적극적 개입으로 전 대통령도 성난 군부를 달랬다.
여담으로 이 과정에서 전두환 정부는 미국의 압력으로 개발을 포기해야 했던 지대지 탄도 미사일 백곰 계획을 재추진했다. 그렇게 완성된 미사일이 현무-1이다. 최근 강릉 지역에 낙탄 사고를 일으켰던 현무-2의 시초 모델이다.
◇구사일생 살아남은 전두환 대통령
전 대통령이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천운이었다. 당시 버마 외무장관의 차량 타이어가 펑크가 났는데 이를 대체할 만한 차량을 구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전 대통령과의 영접이 늦어졌다. 전 대통령이 외무장관을 기다리면서 두 사람이 아웅산 묘소 출발 자체가 4분 가량 지체됐다.
주 버마 주재 한국대사가 전 대통령과 닮은 외양인 것도 북한의 오판에 영향을 미쳤다. 전 대통령 도착 전에 버마 의장대가 시범 연주를 시작했는데 이 소리에 맞춰 테러범들이 폭탄을 터뜨리면서 스케줄 보다 이르게 테러가 자행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랑군은 ‘전쟁의 끝’ 또는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