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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손의연 박순엽 기자] 최근 항공사 직원 등 공항 관계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항공기 내에서 승객의 갑질이나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항공보안법을 적용해 무겁게 처벌하지만 공항 내 벌어지는 갑질과 폭행에 대해선 직원들이 딱히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장에서 직원들의 재량권을 확보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항 내 갑질·폭행 만연…멍드는 직원들
인천국제공항경찰단은 지난 28일 오후 1시50분쯤 인천공항 내 출발 탑승구에서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김모(38)씨를 현장 체포해 불구속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과 피해 직원 등에 따르면 김씨는 직원의 명치 부분을 손바닥으로 가격하고 폭언과 욕설을 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수하물 무게 제한에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서 직원들이 승객으로부터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14일에는 공항에서 수하물 무게 측정 결과에 항의하던 베트남 보따리상인 40대 여성이 수하물 무게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항공사 직원의 뺨을 때려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일본 후생노동성 과장급 간부가 김포공항에서 만취 상태에서 탑승을 거부당하자 항공사 직원을 폭행해 한국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경찰단에 따르면 인천공항 내 범죄 건수는 2015년 149건, 2016년 136건, 2017년 160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폭력 사건은 2015년 28건에서 2016년 42건, 2017년 45건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계속되는 공항 폭행사건에 직원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건이 경찰까지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직원들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실제 공항 종사자와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승객으로부터 폭언 또는 인격 훼손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90.1%으로 나타났고, ‘1~2일에 1번은 폭행당한다’는 답도 절반(49%)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 항공사 직원 이모씨는 “중국인 승객은 비자확인을 반드시 해야하는데 한 남성이 항의하며 여사원 멱살을 잡은 적도 있다”며 “사원이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남성은 그대로 항공기에 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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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내 폭행 사건은 항공보안법을 적용받아 일반 폭행죄보다 무거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그러나 공항 내에서 폭행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는 항공보안법이 적용되지 않고 일반 형사 사건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공항 내 폭행사건은 공항경찰단으로 인계돼야 하지만 이마저도 대다수 이뤄지지 않는다. 승객이 경찰 조사를 받으려면 항공기에 탑승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 봐 대부분 쉬쉬하며 넘어가는 실정이다. 더욱이 항공사의 계열사 직원들은 승객의 폭행에 더욱 대처하기 어렵다. 국내 대형 항공사 경우 공항 내에서 승객의 갑질이나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매니저가 현장에서 승객의 탑승 거부 등 상황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만 계열사는 이러한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지상직 자회사 KA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경찰 조사까지 갈 경우 해당 승객이 조사를 받기 위해 항공기에 오를 수 없어 대부분 그냥 지나가고,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본청으로 보고를 올려야하는 과정이 까다롭다”라며 “계열사 직원은 승객이 난동을 부리더라도 항공기에 오르지 못하게 할 결정권마저 없어 승객 갑질과 폭행을 그대로 묵인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의 재량권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상에서도 기내와 마찬가지로 승객에 의한 갑질이나 폭행이 있었을 때 승무원들이 무조건 승객에게 사과하지 않도록 현장 직원들의 재량권을 보장해야 한다”라며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회사 내 업무 매뉴얼 등을 잘 구축하고 실천할 수 있게 현장 직원들의 권한을 강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승무원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갑질을 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자체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