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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래의 CEO스토리]우리가 좀비? 두고 봐라!

강경래 기자I 2019.05.18 06:00:00

김덕용 케이엠더블유 회장, 글로벌 기지국장비 회사 성장
4G 투자 지연·中경쟁사 등장에 2014년 이후 적자 이어져
주거래은행 등 금융권 ''좀비기업'' 분류, 이후 ''와신상담''
매시브 마이모 상용화 성공, 올해 실적 턴어라운드 예상

김덕용 케이엠더블유 회장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 “저기 봐요. 저렇게 꾸준히 성장해왔는데. 이런 회사를 좀비기업이라니…”

2016년 8월. 경기도 화성시 케이엠더블유(032500)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김덕용 회장은 한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는 △100만불(김영삼정부) △3000만불(김대중정부) △5000만불(노무현정부) △1억불(이명박정부) △2억불(박근혜정부) 등 무역의 날에 받은 ‘수출의 탑’이 총 5개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출의 탑을 수상한 것이었다. 그만큼 회사가 창업 이후 꾸준히 성장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1세대 벤처기업인 중 한명에 꼽힌다. 그가 1991년 당시 12평짜리 창고에서 혈혈단신 창업한 케이엠더블유는 이후 기지국장비 분야에서 노키아와 에릭슨,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해왔다. 그 결과, 회사 매출액은 2013년 3179억원(영업이익 435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듬해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시장을 중심으로 4G(4세대) 이동통신 인프라 추가 투자가 기약 없이 지연됐다. 그나마 있던 시장도 중국 경쟁사들이 저가 제품으로 치고 들어오면서 2014년 이후 2년 연속 수백억대 적자를 봐야 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금융권이 고개를 돌렸다.

케이엠더블유는 2016년 들어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차입금 연이율 12.3%를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은행과는 수년 동안 4% 안팎의 이율로 거래해온 터였다. 이를 2015년엔 7%대, 이듬해엔 두 자릿수로 올린 것. 또 다른 은행에서는 케이엠더블유를 잠재부실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초조한 듯 줄곧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았다. 기자와 대화하는 2시간 동안 담배 한 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2, 제3금융권도 아닌 시중은행에서 우리 같은 수출주도형 중견기업에 두 자릿수 연이율을 제시했다. 은행이 고리대금업체로 전락했다. 반드시 차입금 갚고 실적도 정상화할 것이다. 좀비기업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봐라.”

3년 만인 올해 4월 김 회장을 다시 찾아갔다. 3년 전과 달리 그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그 사이 담배는 줄이고 술은 아예 끊었다고 했다. 김 회장의 표정에서 올해 실적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케이엠더블유는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704억원보다 68% 늘어난 1182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8억원에서 248억원으로 무려 786%나 늘어났다. 김 회장은 “현 추세라면 연간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지난 4년간 낸 적자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김 회장은 차입금을 줄이기 위해 소위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치웠다. 2015년 자회사인 텔콘 지분을 전량 처분하고, 이듬해엔 경기도 화성시 본사 사옥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매각했다. 같은 해 충남 천안시 공장도 처분했다. 2017년에는 기지국장비와 함께 회사 양대 축을 형성했던 LED(발광다이오드)조명 사업마저 분사시켰다. 지난해 하반기엔 직원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마저 헐값에 처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회사 재무상황은 한층 건전해졌다. 2015년 말 기준 437%였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86%까지 떨어졌다.

다행히 그 사이 경영 환경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올 들어 5G 이동통신 서비스가 한국과 미국 등을 중심으로 본격 도입되기 시작한 것. 이 과정에서 케이엠더블유는 5G 기지국장비 핵심장치인 ‘매시브 마이모’(Massive MIMO, 대용량 다중입출력장치) 제품을 독자 기술로 확보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노키아에 매시브 마이모 제품을 독점 공급한다.

금융권에 학을 뗀 김 회장은 우리나라 금융을 향해 쓴 소리를 던졌다. “금융권은 햇볕 날 때 우산을 주고, 비가 오면 여지없이 우산을 빼앗는다. 우리나라에서 사업할 경우 금융권 절대 믿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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