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어제 오전 언론사 데스크에 ‘KT 재무실 홍길동 부장’ 명의의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A4 용지 한 장으로 정리했는데, 오늘로 예정된 KT 실적 공시와 관련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내년에는 더 나빠질 것이라며 배당도 못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편지는 임원임금을 15% 반납하고 팀장과 임원 법인카드까지 동결했지만, 영업익은 크게 못 올리고 있다면서, 올 상반기 이동통신가입자가 35만 명이나 줄어든 탓이라 적었다.
발신인이 없어 수상한 마음이 앞서지만, 지나쳐 버리기 어려웠던 것은 편지 막바지에 실상을 덮는 경영진과 낙하산만 날려보내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소액투자자의 권익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편지는 ‘KT 담당 부서는 신문 안 보는 토요일에 공시하는 등 영업이익을 사실상 은폐하려고 한다’며 ‘언론에서 소액투자자와 주인 없는 KT의 위기에 관심을 둬달라’고 마무리했다.
사실 KT(030200) 실적에 대한 우려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경쟁사들은 롱텀에볼루션(LTE) 덕분에 2010년에 비해 돈을 더 벌었지만, KT만 전년 대비 0.8% 무선 수익이 줄었다. 일부 경영진은 BC카드나 KT스카이라이프 같은 계열사 비통신에서 잘하고 있으니 큰 문제 없다고 안심하지만, 대다수는 현금이 바닥나 곧 있을 주파수 경매에 자신 있게 참여하기 어렵다고 걱정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실적 추락으로 직원들과 주주들은 걱정이 큰데, KT 경영진들은 오히려 잡음을 내버려두거나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이석채 KT 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KT는 홍사덕, 김병호 씨 등 친박인사를 영입한 데 이어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정책특보(홍보단장)를 지냈던 임현규 씨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임 씨는 2007년 박 대통령 비방 혐의로 구속된 전력 탓에 친박으로 분류되기는 어렵지만, 정·관계 마당발로 알려진 사람이다. SK텔레콤도 대외담당 고문으로 영입했지만, KT가 정식 보직을 주면서 영입한 것은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부추겨 주파수 정책을 자사에 유리하게 바꾸려 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정치권이 민영화된 KT에 대해 지배구조를 뒤흔드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지만, 경영진 스스로 정치권의 마수(魔手)를 유도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KT는 기업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사업구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 그것이 KT 주주들과 3만 2000여 직원들, 그리고 우리나라 IT 산업이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