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리스크`라는 말은 여러 경우에 쓰인다. 어떤 오너는 폭력을 휘둘러 기업의 이미지를 한 순간 추락시키는가 하면 또 어떤 오너는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한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송두리째 흔드는 `오너 리스크`도 있다. 오너의 지나친 사업 확장 욕심과 재무적 판단 오류 때문이다. 오너의 욕심이 화를 부른 기업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인수합병(M&A)은 자금 부담으로 이어져 기업의 숨통을 조여 온다.
체력 딸리는 `M&A 공룡` 이랜드
올 초 미국프로야구(MLB) 팬들의 눈을 의심케 한 보도가 있었다. LA다저스 인수전에 이랜드그룹이 뛰어들었다는 소식이다. LA다저스가 한국 기업의 품에 안길지 야구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의 미국 MLB 데뷔 구단이기도 한 LA다저스는 1884년 창단 이래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6차례나 차지한 명문 구단이기에 야구팬들의 마음이 설레는 것도 당연했다.
이랜드의 인수 의도와 진정성에 의문을 품기는 시장뿐만 아니라 외신도 마찬가지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랜드가 피터 오말리 전 다저스 구단주 등과 구성한 `오말리 컨소시엄`을 배제한 채 매직 존슨이 참여하고 있는 투자단과 스탠 크롱크 NFL 세인트루이스 램스 구단주,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이 이끄는 투자단 등 3곳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예상대로 이랜드는 입찰에서 떨어졌고 LA다저스는 매직 존슨이 이끄는 투자단의 품에 안겼다.
이랜드의 LA다저스 인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크레딧업계는 이를 하나의 시그널로 받아들이며 우려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을 통해 이랜드는 인수목적 향후 시너지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않은 재무적 판단을 쉽게 내린다는 인상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는 얘기다. 이랜드의 LA다저스 인수 시도 배경에 대해서는 설만 난무하다. 박성수 이랜드 회장의 야구 사랑이 가져온 무리수라는 평가도 있고 미국 의류시장을 염두에 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랜드가 크레딧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뉴코아(6254억원)와 한국까르푸(1조7100억원)를 인수하면서부터다. 1995년 설악산켄싱턴호텔 인수를 시작으로 20여개 사를 인수했고, 뉴코아와 한국까르푸를 대부분 차입으로 마련한 돈으로 인수했다. 이는 재무부담을 급격히 키웠고 비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노조와 갈등까지 더해지며 결국 2008년 한국까르푸를 다시 내놓았다.
"매물만 나오면 기웃"
이때만 해도 M&A에 크게 데인 이랜드의 행보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랜드가 홈에버를 매각키로 하면서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제 버릇 남 못주듯` 몸집불리기는 다시 시작됐다. 2010년 이탈리아 신발의류업체인 라리오, 벨페를 인수했고, 가방브랜드 만다리나덕도 품에 안았다. 명품브랜드 코치넬리와 록캐런오브스코틀랜드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줄줄히 인수했고, 미국 신발업체 CBI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엘칸토, 광주 밀리오레도 품에 안았다. 레저부문에서도 공격적 행보를 드러냈다. 2010년 C&우방랜드를 인수했고, PIC사이판과 팜스리조트도 사들였다.
IB업계와 크레딧업계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시장 관계자들은 "매물만 나왔다하면 앞뒤 안 가리고 찝적거린다"는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랜드의 반박 논리의 중심에는 중국사업의 유망함이 있다. 이랜드는 중국 의류 사업 순항으로 올해 중국 내에서 연매출 2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 `티니위니` 등 브랜드가 중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크레딧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실적이 제 아무리 좋아도 현금화가 되기 전엔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배당이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현금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 측에서 제시하는 실적 전망만 언제까지 믿어줄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차입금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통 M&A를 주도하는 이랜드리테일의 부채비율은 2007년 말 160.7%에서 2010년 말 199.6%, 2011년 6월 현재 202.7%까지 치솟았다. 2010년 동아백화점 양수와 강서백화점 출점투자, 신규점 오픈 등 투자 확대가 차입금 규모 증가로 이어진 탓이다. 차입금 의존도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2007년 말 42.6%였던 차입금의존도는 2009년 말 29.5%까지 떨어졌지만 2011년 6월 현재 다시 45.4%까지 올라섰다. (★아래 그래프 참조)
안나영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이랜드의 M&A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판
단된다"며 "이런 확장전략이 과도하게 외부차입에 의존해 이뤄진다면 그룹 전반의
재무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룹의 주력사로서 이랜드리테
일이 이를 상당부분 짊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진·웅진의 부메랑
오너의 M&A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칼날 같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곳도 있다. 바로 유진기업(신용등급 BBB- 부정적)이다.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유진기업과 하이마트간 이면계약이 있었다는 혐의가 포착됐다. 2007년 말 하이마트 매각과정에서 유진그룹이 더 높은 가격을 써낸 GS홀딩스를 제치고 하이마트 지분을 인수할 수 있었던 데는 선 회장과 맺은 이면계약 때문이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선 회장은 유진이 지분을 매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신 수백억원대 재산상 이득을 챙겼고, 하이마트 입장에서는 지분을 싸게 판만큼의 손실을 입었다는 얘기다.
IB업계 관계자는 "하이마트를 인수하겠다는 오너의 의지가 참사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가 될 듯하다"고 평가했다.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이 딜의 후폭풍을 온 몸으로 맞고 있다.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가운데 하이마트 이사회 의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웅진코웨이를 매물로 내놓은 웅진홀딩스 역시 그간의 화려한 M&A 행보가 그룹의 향후 운명을 결정지을 위기에 놓여있다. 윤석금 회장은 지난 2007년 6월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로부터 극동건설을 6600억원 인수키로 결정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웅진그룹의 재무건선정은 급격히 악화됐다. 신용평가사들은 "공격적 확장책으로 재무 부담이 증대된 데다 극동건설의 사업 환경 악화로 직간접적인 부담이 늘어났다"며 웅진홀딩스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다.
"회장님, 시장과 通하소서!"
이후 극동건설 관련 유상증자 및 우발 채무 규모 증가 등으로 극동건설의 신용 위험이 웅진홀딩스에 전이됐다. 신평사들이 웅진홀딩스를 부정적 검토대상에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엔 웅진케미칼을 인수했고, 에너지부문을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 아래 웅진에너지, 웅진폴리실리콘 등을 통해 태양광 부문 투자도 크게 늘렸다.
이 과정에서 재무부담은 가중됐다. 2011년말 웅진홀딩스와 자회사의 단순합산 총차입금 규모는 2조9000억원 수준으로 웅진홀딩스의 사업 역량과 현금창출력 대비 과도한 수준까지 불어났다. 또 웅진플레이도시 등 극동건설 사업장 구조조정 과정에서 설립된 계열사의 차입금과 이에 대한 우발채무, 극동건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지급보증 관련 우발채무 등이 재무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1년 말 순차입금 규모는 8701억원으로 2008년 말 대비 2000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웅진코웨이 매각을 추진하고 있어 현금흐름이 개선될 기대감이 있지만 태양광 관련 투자부담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그간의 M&A로 인한 재무부담을 덜어내기가 녹록치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재헌 한기평 수석연구원은 "웅진코웨이 매각은 그룹의 재무와 사업적 측면에서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재무적으로는 대규모 현금유입이라는 호재일 수 있지만 사업적 측면에서는 안정적 사업기반을 확보한 주력 계열사를 매각해 사업포트폴리오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개별 기업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시장과 소통 없이 시장의 정서를 무시한 재무적 결정을 내린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한 SRE 자문위원은 "이들 기업들은 결국 시장에서 돈을 빌려 몸집을 키우고 있는 것"이라며 "시장의 돈을 쓰려면 시장과 교감해야 하는 것도 재무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7호 M+`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7호 M+는 2012년 5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