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골프)마나님의 레슨법

김진영 기자I 2009.11.24 10:25:03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자고로 운전과 골프는 부부지간에 가르치고 배울만한 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최 부장 마나님은 오늘 그 말을 바꿔놓았다.

‘방법을 바꾸면 할 만하다’로...물론 쉽지는 않았다.

오늘 마나님은 폭발 직전까지 갔었다. 빛 좋은 휴일 오후, 아이들이 친구들과 우르르 나가버린 틈을 타 부부가 나란히 연습장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골프 좋아하시는 친정 아버지 덕분에 이미 십 수년 전에 골프채를 잡아 싱글 핸디캡 스코어도 서너 번 기록했던 마나님과는 달리 일에 쫓기느라 미루고 미루다가 연초에 겨우 마음 다잡은 최 부장은 그야말로 비기너다.

처음부터 혼자 하겠다길래 연습장이고 필드고 단 한번 같이 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연습장 나들이가 사뭇 설렜던 마나님이었는데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속이 터졌다.
앞 타석에 자리잡은 최 부장이 비기너의 전형적인 모습, 그러니까 그립 절대 풀지 않고 발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포즈로 죽어라고 공을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러다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는데 마나님이 한 스무 개 정도 쳤을까 싶었을 때 벌써 100개 들이 박스 두 개째가 비워져 가는 것을 보면서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저걸 연습이라고 하나. 저 엉망인 샷이 몸에 붙으면 절대 제대로 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나. 몸이 저렇게 스웨이가 되면 어쩌란 말인가.

보다 못해 마나님이 최 부장을 불렀다. 그립이랑 스탠스는 공 하나 칠 때마다 바꿔 봐요, 공 안 맞을 때는 쉬는 게 낫습디다, 몸의 축이 움직이지 않아야 볼이 제대로 맞지….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돌아보다 다시 자리잡고는 언제 그런 말 들었냐 하며 똑같이 패대는 최 부장을 보면서 마나님은 아예 자기 연습을 접었다. 아니 그렇게 말고 이렇게, 그렇게 치니까 뒤땅이 나죠, 몸을 그 자리에서 회전시켜요 밀지 말고, 아아니~~나 좀 봐봐요, 그렇게 말고 이렇~게...

갑자기 최 부장이 스윙을 멈추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벌컥 소리를 질렀다.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냥 냅 둬!"

그러더니 말로 담아내지 못한 분노, 짜증 뭐 그런 감정을 드러내려는 듯 있는 힘껏 공을 패 미스 샷 연발탄을 날리고는 클럽을 홱 팽개치고 커피 머신을 향해 씩씩거리며 가버렸다.

순간 멍해진 마나님, 십 수년 간 갈고 닦은 노하우 전수해주려는 게 잘못인가, 가르쳐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참나 하며 별별 생각에 휩싸였다. 섭섭하게 느꼈던 옛 일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 나올 태세였다.

이래서 부부간에 골프 가르치지 말라 했나 보다 싶었다. 에이, 그냥 짐 싸서 혼자 집에 가버릴까 보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최 부장은 저 멀리 혼자 앉아 커피를 홀짝거렸다.

한참이 지난 뒤 최 부장이 타석으로 돌아왔을 때 돌부처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마나님도 움직였다. 최 부장이 가르쳐 준대도 싫으냐는 타박을 기대하고 있는데 마나님은 딴 소리를 했다. “저기 50야드 푯말 맞추기 시합해요.”

이럴 때는 두말 하면 완전 끝이다. 말 없이 고개 끄덕이는 최 부장.
둘이 번갈아 치기로 했는데 처음 타석에 들어선 최 부장이 예의 그 완전 비기너 포즈로 앞뒤 안 재고 무조건 클럽을 휘둘러 완벽한 뒤땅 샷을 냈다. 다음 차례 마나님은 아슬아슬하게 1m 왼쪽으로 공이 벗어 났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최 부장이 공이 아니라 목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립도, 스탠스도 완전 고정이더니 이제는 목표에 맞춰 제대로 섰나 두 번, 세 번 셋업을 점검하고 부드럽게 스윙하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50야드 푯말은 마나님이 친 공에 먼저 맞았다.

다음은 왼쪽 기둥 옆에 붙은 100야드 표지판이 목표가 됐다. 지기 싫어하는 천성에 나름의 재미까지 붙여 최 부장은 집중도 최상이 됐다. 그 틈을 노려 마나님이 한 마디씩 던졌다. “어휴, 진짜 아깝다. 똑바로 갔는데 뒤땅이네. 볼은 좀 더 오른발 쪽에 놓으면 뒤 땅을 안낼 수도 있을 텐데…” 다음 타석에서 최 부장은 공이 오른발 쪽에 놓이도록 스탠스를 조절했다.

결국 마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고, 최 부장은 목표를 맞추고 말겠다는 열정에 휩싸여 하라는대로 다 따랐다. 그러는 동안 최 부장의 스윙은 훨씬 더 부드럽고 정확해졌다.

부부간에 골프 가르치고 배우는 일, 최 부장 마나님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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