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학창시절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세상을 쥐고 흔들었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론 공부가 성공의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지만 말 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옆에서 보기에 불꽃이 튈 정도로 열심이니까.
아침 잠 그렇게 많던 봉팔씨, 마나님이 세상 모르고 자는 새벽 5시30분에 벌떡 일어나 혼자 신발과 클럽 챙겨 들고 연습장엘 간다. 1시간30분 남짓 약 300개의 공을 두들겨 팬 뒤 돌아와 출근한다. 팔뚝과 어깨에 파스 냄새가 진동한다.
골프채 잡은 직후 열 올리며 연습장에 다녔지만 한동안 시들하다가 최근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이유가 있다. 마나님이 보기에는 얼마 전 함께 라운드했던 마나님 동생, 그러니까 봉팔씨 처남 때문인 것 같았다.
나름 골프 선배로 폼 좀 잡으려고 필드에 데리고 나갔던 처남이 “어쭈, 이것 봐라”할 정도로 곧잘 공을 날렸기 때문이다. 손아귀에 힘 꽉 들어가는 봉팔씨의 마당쇠 스타일과는 달리 처남은 예쁜 아가씨 꼬실 때 날리는 윙크처럼 부드러운 스타일로 스윙을 했다.
봉팔씨 공은 임팩트 이후까지 남아 있는 팔뚝 힘에 못 이겨 왼쪽으로 급격하게 꺾이거나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지만 처남 공은 부드럽게 떠올라서 많이는 못 가도, 끝까지 날아서 다녔다.
“매형처럼 힘껏 때려봤으면 좋겠다”는 처남을 향해 “그럼, 남자는 힘이지”라고 말했지만 돌아서는 표정에는 “힘 실리는 것도 공이 뜬 다음이지, 내 몸만 죽겠다”하는 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나님 보기에는 그날 라운드 이후 봉팔씨의 새벽 연습에 불이 붙었다. 그건 틀림없이 손아래 처남에게 지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봉팔씨가 꼽는 이유는 처남이 아니었다. “동생한테 지는 게 창피해서 그렇게 열심이냐”는 마나님 말에 “그게 아니라…”하며 속내를 털어 놓았다.
봉팔씨에게 충격을 준 사람은 처남이 아니라 회사 동료인 이 차장이었다. 이 차장은 드라이버를 한번도 쳐 본적이 없고, 퍼터도 잡아 보지 않았다는 완전 비기너였다.
연습장에만 몇 번 갔을 뿐 필드는 처음이라는 이 차장을 골프장으로 데리고 가면서 차 안에서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말이야, 아이언 샷은 이렇게 하고, 퍼팅은 저렇게 하면 돼… 어쩌고 저쩌고, 선배 티를 한참이나 냈던 봉팔씨였다.
그런데 막상 필드에 나서니 누가 선배고, 누가 비기너인지 알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차장은 한번도 쳐 본 적 없다는 드라이버를 가지고 200야드가 넘는 샷을 날렸지만 봉팔씨는 여전히 땅으로 기어가다가 고꾸라지고 마는 뱀 샷을 연발했다.
아이언도 마찬가지. 이 차장은 스탠스를 제대로 잡을 줄 몰라 공이 자꾸 오른쪽으로 가서 그렇지 똑바로 날아가기는 했다. 봉팔씨는 아이언 잡은 손에도 계속 힘이 들어가면서 공이 필드를 화폭 삼아 좌로, 우로 난초를 쳤다. 그래도 그린 위에서는 선배인 봉팔씨가 나았다. 거리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봉팔씨, 혼자 씩씩대다가 이 차장에게 물었다. “오늘 머리 얹는 거 맞아? 그럴 리가 없는 샷인데!” 이 차장의 답은 명쾌했다. “필드는 처음이에요. 하지만 연습장은 한 3개월 넘게 매일 다녔는데요..”
순간 봉팔씨는 머리가 띵했다. “라운드가 연습이지 뭐” 하며 큰 소리만 쳤던 게 생각났고, 열심히 연습해보자 다짐했던 초창기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막 등장한 골프 후배들, 처남이나 이 차장에게 뒤쳐질 수 없다는, 아니 쪽 팔릴 수 없다는 울컥함이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자신보다 잘 치는 사람들과 라운드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봉팔씨의 새벽 골프는 다시 시작됐다. 회사 일에 지쳐, 정확하게는 늦게까지 이어진 회식 때문에 녹초가 되어 못나갈 때도 있지만 새벽 5시반 자명종 소리 한번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은 경쟁자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내내 듣고 있던 마나님이 한 마디 했다. “골프는 역시 친구가 있어야 한다니까. 같이 라운드 할 친구는 물론이고 서로 경쟁하면서 각자 실력을 연마하도록 자극을 주는 친구 말이야. 죽을 때까지 한 팀 만들어 골프 칠 수 있으면 성공한 사람이라잖아. 적어도 3명의 친구가 끝까지 남는 거니까.”
봉팔씨 생각한다. “해몽이 좋다. 난 뭐, 일단 창피 면하는 게 우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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