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라운드 중 캐디가 미운 경우는 여러 가지다.
내 퍼팅 라인은 대충 보고 잘 생긴 동반자 라인은 꼼꼼하게 챙길 때, 내 샷은 본체 만체하고 전 홀 버디로 내 피 같은 배춧잎 챙겨간 동반자 샷에는 박수까지 치며 ‘굿 샷’하고 외칠 때.
그리고 또 이런 경우다.
대형 벙커가 앞에 도사리고 있는 그린까지 캐리(carry, 날아가는 거리)로만 155야드가 남은 상황. 굴러가는 거리(run,런)까지 최대로 합쳐야 7번 아이언으로 150야드를 겨우 맞추는 내 비거리로는 버거운 형편. "6번을 잡을까.." 한창 머리 굴리는데 옆에서 동반자가 소리친다. “언니야 8번!”
이어서 들리는 캐디 목소리. “김 사장님은 몇 번 드려요?” 차마 ‘6번’이라고 소리칠 수 없어 손가락 여섯 개를 펴 보였더니 “6번이요?”하면서 저 구석에서 공 찾는 다른 동반자까지 들을 정도로 카랑카랑하게 확인하는 그녀. 가슴에 대못이 박힌다.
‘남자는 거리, 여자도 거리’라는 어느 골프용품업체 광고에 세뇌됐기 때문이라고 한풀 접어 두고 생각하더라도 같은 거리에서 두 클럽까지 쓰는 채가 달라진다면 주눅들게 마련이다. 혼자 기 죽는 것도 충분한데 캐디가 소리 질러 확인시켜 줄 때야 미운 마음 드는 것은 당연지사.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휘두른 샷이 제대로 맞을 리 만무하고 공이 벙커로 직행하기라도 하면 ‘허걱’소리가 절로 난다. 미스 샷이라고, 나도 원래 7번 정도면 그 거리는 보낼 수 있다고 외치기라도 하고 싶은데….
“샌드 드리면 되죠?” 또 대못 박는 캐디 목소리. 절망이다.
하지만 무릎 꺾기 전에 한 가지 알아두자. 번호가 같다고 다 같은 클럽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아이언 번호 별로 거리가 달라지는 것은 헤드 로프트(loft, 클럽을 지면에 댔을 때 페이스와 지면이 이루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번호가 작을수록 로프트도 작아져서 공의 탄도가 낮아지고 더 많이 날아가 떨어진 뒤에 구르는 거리도 많다.
그런데 메이커 별로 로프트에 차이가 있다. 같은 7번 아이언이라도 로프트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일본 브랜드 골프클럽들은 ‘짧은 데 콤플렉스가 있는’ 고객들을 위해 조금씩 로프트를 세워 만들어 왔다. 예전 클럽에 비해 요즘 나오는 신제품도 마찬가지. 무게 중심을 낮출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볼을 쉽게 띄워 올릴 수 있게 되자 소위 ‘스탠다드(standard)’로 여겨져 온 것에 비해 크게는 7도까지 각을 세워 만들고 있다.
통상 번호 하나 달라질 때마다 3~4도 정도 로프트 차이가 나는 것을 생각할 때 동반자의 8번 아이언이나 내 6번 아이언의 로프트가 같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골프용품 전문가들에 따르면 남성용인 경우 전통적인 아이언 로프트는 3번 22도를 시작으로 5번 아이언까지 3도씩 차이 나고 6번 아이언부터 피칭웨지까지는 4도씩 차이가 나서 피칭 웨지가 48도였고 샌드 웨지는 56도다. 피칭과 샌드 사이가 8도나 차이 나기 때문에 끼어 든 것이 52도짜리 갭(gap) 웨지다.
그런데 최근에는 3번 아이언이 19도까지 세워진 데다 5번 아이언까지는 2도씩, 6번부터 8번 아이언까지는 3도씩, 또 9번부터 피칭까지는 4~5도씩 차이 나는 경우가 있다. 전통적인 기준으로 볼 때 36도인 7번 아이언이 요즘에는 29도로 7도나 세워져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번호는 그냥 편의에 따라 붙인 이름일 뿐 아이언 거리를 비교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겠다. 가슴에 박힌 대못 빠지는 소리가 좀 들리시는지?
그래도 캐디가 ‘6번요?’하면서 되묻는 소리를 듣기 싫다면… 얼른 뛰어가서 골프채 직접 빼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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