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 장 제목은 `엑스터시, 피아노, 어뢰(Ecstasy, Pianos, Torpedoes)`다. 이게 퀄컴이라는 기업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엑스터시`는 1932년에 제작된 영화다. 그 시절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섹스 심벌로 손꼽혔던 헤디 라머가 전라(全裸)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우리에게는 `삼손과 데릴라(1949년)`의 데릴라 역으로 잘 알려진 라머는 인형 같은 외모에 타고난 발명가 재능을 겸비한 여배우였다.
나치를 혐오했던 라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망명해 대역확산이라는 통신기술을 처음으로 발명했다. 이 기술은 특허까지 받았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현실화할 수 없었다.
라머 역시 특허권을 미군에 무상 기증해 아무런 경제적 이득도 얻지 못했다. 미군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가 나치 해군함정의 방해전파를 피할 수 있도록, 즉 어뢰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대역확산 기술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휴대폰의 출발점이 됐다. 이 책은 퀄컴과 CDMA의 역사를 이렇게 시작한다.
1968년 MIT 출신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 교수로 있던 어윈 제이콥스는 통신기술 컨설팅기업 링카비트를 설립했다. 퀄컴의 뿌리다.
1980년 링카비트가 M/A-COM과 합병한 뒤, 제이콥스는 회사의 소극적인 신제품 개발전략을 참지 못하고 1985년 4월 사직했다. 3개월 후 그를 따라 링카비트를 그만둔 옛 동료 6명과 함게 창업한 기업이 퀄컴이다.
"우리가 그 때 마음속에 그려둔 제품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제이콥스의 말처럼 퀄컴은 백지 위에서 출발했다. 퀄컴의 가장 빛나는 업적은 CDMA 기술을 상용화한 것이다.
이 책은 퀄컴이라는 한 기업의 흥미진진한 성공 스토리를 뛰어넘어 기술혁신가들의 신념과 의지를 들려준다. 그것도 개념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퀄컴이라는 기업이 걸어온 구체적인 발자취를 통해, 이동통신산업의 흥미진진한 발전과정을 더듬어가면서 자세히 이야기한다. (데이브 목 지음/박정태 옮김/굿모닝북스 출판/1만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