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이데일리 윤도진기자]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과 캔커피 하나를 골라들고 계산대 앞에서 신용카드를 꺼내기란 여간 멋적은 일이 아니다. 햄버거 세트 하나를 사거나 하는, 비교적 값이 많이 나가지 않는 물건을 구입할 때는 대부분 마찬가지다.
계산대의 점원은 `요걸 사면서 카드를 쓰나, 째째하게…`하는 눈빛을 건네거나, 더러는 "잔돈 없으세요?"라며 대놓고 핀잔을 주기 마련이다. 손님 역시 카드를 꺼내든 손이 민망해 괜히 지갑이나 호주머니를 뒤적이다간 "어째 잔돈이 하나도 없네"하며 괜한 변명을 우물거리기가 일쑤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 돈을 내고 물건을 사면서도 왠지 불편한 이런 상황, 그러나 이 같은 광경은 머잖아 보기 드문 일이 될 수 있다. 소액구매를 위한 간단한 `비접촉식 카드 결제`가 생활로 자리잡게 될 때의 얘기다.
◇ 거대한 소비제국의 결제 혁명 `Contactless`
한여름 점심무렵, 관광객과 주변 사무실의 회사원들로 북적이는 맨하탄 브로드웨이 한편에 자리잡은 맥도날드 매장. 10여개의 계산대마다 간단하게나마 허기진 배를 달래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순서 기다리기가 지루할 법도 하지만 수많은 손님들을 소화해 내야 하는 이 곳 계산대에는 좀더 빨리 사람들을 맞을 채비가 돼 있다. 계산대 마다 설치된 비접촉식 카드 결제 단말기가 그것이다.
순서를 기다려 주문을 하고, 국내에서 발급받은 모바일 카드 칩이 장착된 핸드폰을 꺼내 단말기에 대기만하면 계산은 끝이다. 굳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거나 잔돈을 거슬러 받을 필요도, 신용카드로 결제한 후 서명하고 영수증을 건네받을 필요도 없다. 서울 시내에서 버스카드를 들고 버스를 타듯이 `Tap and Go`(건드리고 가다)하면 된다.
마스타, 비자 등 국제 카드브랜드사들이 최근 가장 주력하는 사업이 바로 이같은 소액결제 확대를 목적으로 한 `비접촉식 카드 결제`의 보급이다.
마스타카드의 경우 뉴욕에서 한 블록 건너 하나 꼴로 등장하는 듀에인 리드, CVS와 같은 편의점(드럭 스토어 형태)과 가맹점 계약을 맺고 비접촉식 결제 방식을 전파하고 있다.
맨하탄 42번가에 위치한 듀에인 리드의 한 점원은 "작은 금액은 여전히 현금으로 지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다"면서도 "비접촉식 휴대폰 카드로 지불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사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25달러 이하의 금액은 서명이 필요 없도록 해, 비접촉식 결제(마스타카드 패이패스)는 소액 위주의 사용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스타카드에 따르면 평균 결제액은 약 20달러로 추산됐으며, 25달러 이하 금액 사용이 75%가량, 우리돈 만원이 채 안되는 10달러 이하의 결제도 45%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패이패스(비접촉식 결제)를 장착한 회원은 카드 사용 횟수가 평균 18% 늘어났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마스타카드 월드와이드의 캐슬린 콘포티 패이패스 담당 부장은 "10달러 이하의 결제가 절반가량이라는 사실은 소비자들이 현금 사용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패이패스는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1000만장 가량 발급되어 있으며, 북미 지역과 유럽 등의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야구장 내 매장,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과 같은 2만7145개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자기 손에 지갑이나 휴대폰을 꺼내 쥐고 소액의 상품을 사는 방식으로의 변화. 소비의 제국 미국은 이미 `잔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결제 혁명이 진행 중이다.
◇ 국내 결제시장의 변화는?
국제 카드브랜드사들은 국내의 결제시장을 변화시키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마스타카드는 삼성카드와 함께 이마트를 처음으로 페이패스 가맹점으로 확보하고, 교보문고, 크라운 커리, 훼미리마트 등과 제휴를 넓혀가고 있다. 비자카드도 할인점 홈플러스를 비롯한 `비자 웨이브` 가맹점 확보 경쟁에 나서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국내의 비접촉식 결제 성장환경이 어느 국가보다 좋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카드의 생활화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결제 행태나 단말기 인프라의 환경적 측면에서 확장이 용이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걸림돌도 도사리고 있다. 양사 모두 본래 타깃이 소액결제인 비접촉식카드를 회당 결제금액이 5만~10만원 이상인 할인점에서 최초로 시작했다는 점. 이는 양사의 경쟁 탓에 단기간 전국망 확보를 위한 미봉책이었다는 지적을 야기한다.
또 결제용 단말기 공급 및 칩카드 사업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결제 시장에 발을 들이려고 하는 이동통신업체들과 결제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카드업계의 보이지 않는 알력도 국내 시장의 확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해외에서보다 국내의 변화가 지체돼 가맹점 저변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국내에서의 비접촉식 카드 경쟁은 무의미해진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막대한 투자비용이 지출되는 `비접촉식 카드`가 단순히 `해외에서만 요긴한 여행 필수품`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비판을 국제 카드브랜드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