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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지급결제를 염두에 두고 공동 인프라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국민·신한·우리·농협·기업·수협은행과 금융결제원은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가 신설한 스테이블코인 분과에 참여해 공동 연구 및 기술 협업에 나섰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비해 기술기업과 협업을 통해 개념검증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류창보 오픈블록체인·DID협회장은 “우선 은행들이 모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스터디를 하고 앞으로 나올 금융당국 가이드라인에 따라 합작 법인 신설도 검토할 예정”이라며 “각 은행이 개별적으로 발행하는 것보다 은행권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준비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우리나라는 아직 스테이블코인 정의·발행 요건에 대한 법안이 없다.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참고해 연구·검토하고 있다”며 “지금으로선 일본 대형은행 모델을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3대 메가뱅크가 투자한 디지털자산 인프라 회사 ‘프래그맷’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오픈블록체인·DID협회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 후 대형 은행이 공동 출자한 합작법인을 만들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각 은행이 개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시장 혼란이 커지고 확장성도 제한될 수 있다”며 “은행이 공동으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유통하는 모델이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실제 신한·농협은행과 케이뱅크는 프로그맷이 주관하는 스테이블코인 한·일 해외송금 실험 ‘프로젝트 팍스’에 참여하고 있다. 은행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일본 금융사에 보내고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받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국가 간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스테이블코인 안정성 등을 점검하고 일본 은행들의 스테이블코인 활용법도 공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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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준비에 나선 은행들은 입법 동향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이날 오전 은행회관에서 금융당국·핀테크사들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관련 해외 입법사례를 논의했다. 금융결제원이 주도하는 은행·핀테크 모임인 ‘오픈핀테크 얼라이언스’ 정례회의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주제로 다룬 것이다. 법무법인 변호사가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의 스테이블코인 입법 사례를 설명하고 금융위원회 당국자와 은행·핀테크가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다.
업계에서는 해외 입법동향과 국회 움직임을 볼 때 3분기 안에는 금융당국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이라 예상한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할 예정인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원화 또는 외국 통화 가치와 연동하며 환불이 보장된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으로 정의하고 금융위의 인가를 받은 업자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권에서는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수개월 안에 국회·당국의 스테이블코인 가이드라인이 나오리라 보고 있다. 지침이 명확해지면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로서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관련 사업을 본격 추진할 수 있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 한국은행과 당국, 민간 업체 간 이견 조율이 관건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금융·통화·외환·과학기술이 모두 얽혀 있어 금융위, 한은, 기재부, 과기부 등 범정부부처 이견 조율이 필수다. 한은은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수단으로 쓰이는 데 부정적이다. 이병목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지난 21일 지급결제보고서 설명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때 준비자산은 예금이나 국채인데 쇼크가 발생해 가치가 불안정해지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가 발행사에 현물 상환을 요청해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며 “미국 정부도 스테이블코인이 국채시장 수요를 높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은은 금융위 가상자산위원회에서 통화정책, 금융안정 측면에서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 불안정성을 설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아직 명확한 뜻을 밝히지 않은 상태지만 CBDC,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 병존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은 신규 고객, 발행·유통 수수료 확보 등의 측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신사업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