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전격 유예한다고 밝히면서 일단 시장은 반기는 분위기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상호관세는 취소된 것이 아니라 유예된 것이고, 품목별 관세는 이미 부과되고 있다. 향후 한미 관세 협상 여부와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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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스콧 베이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등이 운영하는 경제정책불확실성지수(EPU) 웹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2월 한국의 EPU 지수는 151.08로 나타났다. 작년 말에 비해 낮아지긴 했으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전히 경제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위기 수준으로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EPU 지수는 비상계엄 사대와 탄핵 정국이 이어졌던 지난해 12월 198.31을 기록하며 지수 산정을 시작한 1990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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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국내 정치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됐으나, 성장률 하락과 통상 압력에 대응한 중요한 정책 결정을 내릴 리더십은 부재한 상황이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규모도 대규모 산불과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국면에서 전망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물가, 성장률 등에 대한 전망이 나와야 여기에 기반을 해서 대응을 정할텐데 이 과정이 지연되면서 정책 결정의 타이밍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말 이후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경제 심리 개선에도 크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경제뉴스 빅데이터를 활용해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측정하는 뉴스심리지수(NSI)는 미국 관세 리스크를 반영하며 이번달(1~6일) 85.52로 전월 99.85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매일매일 상황이 계속 변하는 상황에서 상호관세 부과 지연이 심리 개선으로 바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며 “글로벌 통상 환경이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대외 여건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봤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상대국에 100% 넘는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양국의 갈등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자,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득과 실에 대한 셈법도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중국에 비해 상품 수출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글로벌 교역 위축과 미·중간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1기 미·중 무역분쟁으로 한국은 수출 부문에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며 “이번에는 관세 범위와 강도가 1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 지속 시 부담은 더욱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한 직접적 피해와 무역정책 불확실성 확대가 글로벌 교역과 수요 약화를 유발하고 이는 한국 수출 감소와 성장률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