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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빈자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

이소현 기자I 2025.04.23 16:12:31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유럽 벗어난 첫 남미 출신 교황
평생을 약자 곁에…겸손·청빈 추구
동성애자 환대 등 가톨릭계 개혁파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세계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향년 88세로 21일(현지시간) 선종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평생을 ‘약자 편에 선 목자’로 살아왔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자취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가장 소탈하고 진보적인 교황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아왔다. 재임 중 난민 문제, 기후 변화, 인신매매 같은 글로벌 이슈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교회 내 포용 확대를 추구하는 태도는 교황 즉위 당시 선택한 이름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가난한 자들과 자연을 사랑한 성 프란치스코를 기리며, 교황 중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했다.

2013년 2월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뒤 그는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며 역사상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아메리카 대륙 출신의 첫 교황이 됐다. 전통적으로는 교황 즉위 후 추기경들의 경의를 받으며 교황좌에 앉는 것이 관례였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서 추기경들의 축하를 받아 주목을 받았다. 이는 그가 기존의 바티칸 관행을 바꿀 준비가 돼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다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다섯 남매 장남에서 최초의 예수회 교황까지 사진으로 돌아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다.

젊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미래의 프란치스코 교황(사진=레딧 갈무리)
날짜 미상인 이 사진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속명)가 가족과 함께 있다. (사진=레딧 갈무리)
1976년경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속명)(사진=레딧 갈무리)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교황의 속명)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였을 때의 날짜 미상의 사진(사진=레딧 갈무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2월 21일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콘시스토리에서 베르고글리오를 추기경으로 지명했다. (사진=레딧 갈무리)
교황 베네딕토 16세(왼쪽)가 2007년 1월 13일 바티칸에서 베르고글리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베르고글리오는 프란치스코 1세 교황으로 선출됐으며, 2013년 3월 13일 로마 가톨릭 교회의 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후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 창문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7월 8일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섬을 방문해 이주민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이번 방문은 이주민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진=AP)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7월 25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바르지냐를 방문하는 동안 산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바르지냐 빈민가는 브라질의 소외된 비공식 정착촌 또는 이웃을 일컫는 말로 1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공동체로, 경찰의 통제를 받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마약 밀매업자의 손아귀에 있었다. (사진=AFP)
2013년 7월 28일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 모여 프란치스코 교황이 브라질 방문의 마지막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7월 29일 브라질에서 돌아오는 교황 전용기 기내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만약 누군가가 동성애자이고 주님을 찾고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11월 25일 바티칸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공개로 만나고 있다. (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9월 24일 워싱턴 DC의 미국 의사당 하원 회의장에서 미국 의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한 최초의 교황이었다.(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9월 24일 미 국회의사당 연회장 발코니에서 의원들과 함께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1년 3월 5일 바그다드 대통령궁에서 바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의 환영을 받으며 첫 이라크 방문에 나섰다. 프란치스코의 이라크 방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박해받는 기독교 공동체 중 하나를 위로하기 위해 안보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우려를 무시하고 이라크를 방문한 역사적인 행사였다.(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1년 3월 7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 지역의 수도 아르빌의 프랑소 하리리 스타디움에 도착해 포퍼모빌을 타고 사람들을 축복하고 있다. 프란치스코의 이라크 순방은 2018년 종식된 이슬람 국가 ‘칼리프’, 즉 정치와 종교가 통합된 이전 이슬람 정부의 잔혹함을 견뎌낸 기독교 공동체를 방문하기 위한 것이었다.(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왼쪽 셋째)이 2023년 2월 4일 남수단 주바의 성 테레즈 대성당에서 주교, 사제, 부제, 축성자, 신학생들과 만난 후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5월 13일 바티칸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 후 악수 하고 있다.(사진=바티칸 미디어, 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3년 11월 22일 바티칸시티 바오로 6세 홀 스튜디오에서 가자지구에서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족 대표단을 만나고 있다.(사진=바티칸 미디어, 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6월 이탈리아가 주최한 G7 정상회의에서 보르고 에그나지아 리조트에서 세계 정상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3월 23일 폐렴으로 5주간 입원했다가 퇴원하기 전 로마의 제멜리 병원 창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0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화절 미사 끝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 별장에 나와 ‘도시와 세상’을 뜻하는 라틴어 ‘우르비 에트 오르비’ 메시지와 축복을 전하고 있다. (사진=AFP)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미사에서 군중을 축복한 후 포퍼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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