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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쉬인 공급업체들 두달새 줄폐업…갈곳 잃은 근로자들

방성훈 기자I 2025.04.17 14:14:37

中광저우 '쉬인마을' 텅 비어버린 공장…공실 속출
공장주들 "2달만에 대거 폐업, 파산 아니면 베트남行"
근로자들 "요즘은 자정 아닌 저녁 퇴근…해고 우려"
베트남 이전한 업체들도 46% 관세 폭탄에 좌불안석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중국 광저우시 판위구. 소위 ‘쉬인 마을’로 불리는 이 곳에는 골목마다 쉬인에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얼마 전까지 근로자들로 북적였던 4층짜리 빌딩 내부는 공실로 가득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여개 업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145% 관세를 부과한 탓이다. 여전히 중국에 남아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 이량화는 16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저기도 이쪽도 불과 2개월 만에 일제히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의 거래는 신규 계약의 전망이 없다.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중국 온라인 패스트 패션 대기업 쉬인에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 미국에서 주문이 뚝 끊기면서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2일 광저우시에서 촬영한 한 건물 내부의 모습. 공장들이 폐업하며 남겨진 공실에 갓 만든 옷 등이 남겨져 있다. (사진=니혼게이자이)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쉬인 마을은 연간 300억달러(약 42조6000억원) 상당의 상품을 판매해 왔다. 쉬인이 지난 2년 동안 급성장하면서 공급업체도 지난해 5800개에서 올해 7000개로 늘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직격탄을 맞았다. 쉬인의 지시에 따라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곳도 있지만, 중국에 남은 곳이 훨씬 더 많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미국으로부터의 주문 급감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SNS)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 등의 도움을 받아 해외 소비자들을 직접 구매(직구)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이전의 대량 주문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이미 일자리를 잃었거나 해고 우려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쉬인 마을 주민이라고 칭할 정도로 높았던 자부심도 땅바닥에 떨어졌다.

청바지 제조 공장에서 일한다는 우모씨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올해 들어 근무시간이 크게 줄었다. 예전엔 자정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젠 주로 저녁 시간에 퇴근한다. 해고될까봐 걱정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근로자도 우씨에게 공감하며 “사장이 공장을 이전하려고 베트남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거들었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800달러 미만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주는 ‘소액 면세 제도’(de minimis)를 다음달 2일부터 폐지하기로 한 결정이다. 이는 지난 2년 동안 쉬인을 급성장시킨 동력이었다. 쉬인의 지난해 미국 매출은 약 85억달러(약 12조원)에 달했다. 로이터는 “쉬인 마을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며 상당한 자본을 투자한 공급업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베트남에 46%의 상호관세가 부과됐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별 상호관세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호관세가 90일간 유예되며 미국의 주문이 다시 밀려드는 등 지금은 ‘반짝’ 특수를 겪고 있지만, 이 기간이 종료되면 다시 관세 부담에 노출된다.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한 후와 리는 로이터에 “중국에 비해 베트남의 노동력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이라며 “중국에선 하루에 옷 1000벌을 생산할 수 있지만, 베트남에선 한 달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쉬인 공급업체들은 파산하거나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6월 중국 광저우 쉬인 마을의 한 섬유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 모습. (사진=AFP)


완벽하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수많은 공장들을 지탱해 온 쉬인의 공급망이 한순간에 붕괴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베트남이 미국과 협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90일 안에 완전한 합의는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로이터는 “가격과 시간이 가장 중요한 산업에서 잠재적으로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상황”이라며 “쉬인의 딜레마”라고 짚었다.

더욱 큰 문제는 미중 관세 전쟁이 잦아들긴 커녕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미국산 수입품에 125% 관세로 맞대응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 갈등이 언제 끝날지 불분명하다.

델라웨어 대학교의 패션 및 의류학과 교수인 성 루는 “쉬인은 조달 기반 다각화와 사업 모델의 상당한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새로운 스타일을 소량 생산해 최종 소비자에게 신속하게 배송하는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쉬인은 공급망을 다각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한 제조업체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에 “아시아용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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