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지난 25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상법은 경제 쪽에서 보면 헌법과 비슷한 것인데, ‘그걸 바꿔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 봅시다’ 하는 게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렇게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처리한 이후 산업계에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거부권) 요청이 계속 이어졌다.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공포하거나, 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처리 시한은 다음달 5일이다. 최 회장이 상법 개정안을 두고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취지대로 안 움직이는 법은 바꿔야”
최 회장은 그러면서 “(상법 개정은) 또 다른 ‘언노운(unknown·알지 못하는)’”이라고 했다. 언노운은 전혀 예측이 안 되는 불확실성 탓에 맞닥뜨리는 리스크를 말한다. 최 회장은 국내외 전반의 가장 큰 리스크를 묻는 질문에 “걱정 중에 가장 큰 것은 언노운이 너무 커져서 기업이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고 가능한 한 미루게 된다는 점”이라고 했는데, 상법 개정 역시 여기에 포함한 것이다.
|
최 회장은 반도체 연구개발(R&D)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를 허용해 달라는 내용의 반도체특별법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데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법이라는 것은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취지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법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정해놓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최 회장은 “법이라는 것은 그 취지를 따라만 가지는 않는다”며 “취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법을 바꾸든 없애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규제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서도 “그러나 너무 많은 비대한 규제는 사람들의 자율을 억압하고 창의성을 추락시키다 보니, (경제를) 성장 시키고 사회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피력했다. 그는 “우리가 제조하고 수출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을 지난 1970년대부터 발전시켜 지금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수명을 거의 다해간다”며 “(미국 등으로부터) 통상 압력이 존재하는 문제가 있고, 강력한 경쟁자들이 떠오르고 있는 만큼 지금 제조업 경쟁력이 과거처럼 좋은 정도가 아니라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기술 굴기가 대표적이다.
최 회장은 “제조를 없앨 수는 없으니 무조건 가야 한다”면서도 “인공지능(AI)을 어떻게 제조에 도입해 제조 능력을 더 잘 갖느냐가 중요한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국내 제조 활동이 축소되는 공동화 현상을 두고 “제조를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잡는 게 선택지가 아니라 오히려 AI를 움직여 제조 경쟁력을 남보다 더 키워야 하는 게 제조를 일으킬 수 있는 더 시급한 선택지”라고 했다.
◇“韓, 수출 주도 모델 변화 고민할 때”
최 회장은 지난달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을 이끌고 트럼프 2기 핵심 참모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동했던 일화도 언급했다. 그는 “러트닉 장관이 한 중요한 얘기는 상계관세(상대 수출국이 특정 상품에 대해 보조금 등의 혜택을 줘 그 가격을 저렴하게 했을 때, 수입국이 과세하는 차별 관세), 즉 상호주의 형태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을 어떻게 대하느냐, 관세를 얼마나 매기느냐, 혹은 비관세 부분에서 어떻게 하느냐 등에 따라 거기에 상응하는 형태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러트닉 장관 입장에서는) 없는 시간을 쪼개 한국을 만난 것”이라며 “그만큼 한국을 중요하게 여기고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줬다고 느꼈다”고 했다.
최 회장은 SK그룹의 대미 투자 등에 대해서는 “이미 계획돼 있는 투자들은 그대로 갈 것”이라며 “물론 보조금 얘기도 있고 그외 정책에 대한 얘기도 있는데,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비즈니스는 늘 그렇듯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