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 사회도 이 용어들을 조금 더 정리하고 통일해, 산업과 정책, 그리고 국민 간의 소통을 더 쉽게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중심에는 ‘디지털자산’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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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이라는 표현은 2019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처음 제안한 용어입니다. 당시 FATF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디지털 형태로 표현된 가치로서, 전자적으로 거래되며 결제나 투자에 사용될 수 있는 자산”이라고 정의하며 이를 ‘Virtual Asset’, 즉 ‘가상자산’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정의는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기능 중심으로 쓰였고, 한국의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역시 이 정의를 반영해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블록체인 기술이 전제로 작동합니다
FATF는 형식적으로 기술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 가이드라인에서는 “가상자산은 일반적으로 중앙기관 없이 운영되는 분산원장 기술(DLT)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정의 속에 ‘블록체인’이나 ‘P2P’라는 말이 직접 등장하진 않더라도, 실제로 FATF가 규제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자산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자산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기술 구조를 전제로 한 자산을 ‘가상자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실체 없는 자산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디지털자산’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합니다
‘디지털자산’이라는 표현은 블록체인 기술뿐 아니라, 그 위에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자산(암호화폐, 토큰, NFT, 증권토큰 등)을 자연스럽게 포괄합니다.
또한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가진 기술적 중립성과 보편성 덕분에, 향후 제도와 기술이 변화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도 갖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MiCA(Markets in Crypto-Assets) 법령을 통해 모든 블록체인 기반 자산을 ‘암호자산(crypto-asset)’으로 통합했고, 미국과 일본도 ‘디지털자산’ 또는 ‘암호자산’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한국도 ‘디지털자산’이라는 용어로 체계를 통일해 나간다면, 국내 법령의 일관성은 물론 국제 규제 환경과의 호환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제도는 기술의 언어를 따라가야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과 금융, 산업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산들이 이제는 단순한 실험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만큼,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도 그 기술 구조를 이해하고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자산’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기술적 정체성과 경제적 의미를 모두 담고 있으며, 정책 설계, 투자자 보호, 기업의 사업 계획 등 현장의 다양한 주체들이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이제는 법과 정책의 언어도 기술과 시장의 흐름에 맞춰 부드럽게 정비할 시점입니다.
‘가상자산’이라는 표현보다 ‘디지털자산’이라는 말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요즘, 이 용어가 블록체인 산업의 공통 언어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봅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향후 제정될 국내 디지털자산 관련 법제도에서 사용하는 디지털자산의 정의는 전 세계적인 흐름을 분석해보면 “블록체인(P2P) 기반 + 암호기술 + 가치 및 권리 표현”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정의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