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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렸지만 높은 문턱에…대형 VC만 웃는다

송재민 기자I 2025.04.17 10:20:00

[큰 손 움직임에 VC 들썩]③
신협 첫 벤처 출자, 결국 대형 VC 독식
리그 분리 요구 커져…"공정 경쟁 필요"
Co-GP 제한, 펀드 다양성 가로막아
"진입 장벽 낮춰야 생태계 다양성 확보 가능"

[이데일리 마켓in 송재민 기자] 민간의 출자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벤처투자업계는 유동성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열어도 들어갈 수 있는 이는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소수 대형사들뿐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출자기회가 늘어나도 실질적인 수혜는 대부분 자금력과 트랙 레코드를 갖춘 대형 벤처캐피탈(VC)에 집중되면서, 중소형 VC들은 여전히 ‘그림의 떡’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다. 대형사 중심으로 출자가 집중되면서 생태계 전반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업계 반겼는데, 결국은 ‘대형사 잔치’

최근 신협중앙회가 처음으로 진행한 벤처펀드 출자사업 결과에서도 비슷한 실정을 엿볼 수 있었다. VC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업에는 20개 이상의 VC들이 지원해 7대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운용사(GP)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최종 선정된 곳은 LB인베스트먼트와 아주IB투자 등 모태펀드 출자사업에서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대형 하우스들이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400억 원 규모로 진행된 이번 출자사업은 각 운용사에 200억원씩 출자하는 구조로, 자본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는 신협중앙회가 최초로 벤처펀드 출자에 지갑을 열었다는 점에서 업계의 환영과 관심을 받았다. 출자비율 역시 50%로 상대적으로 VC의 부담을 덜어주는 요건으로 분석됐다. 이에 한국투자파트너스, 신한벤처투자, 인터베스트, 미래에셋벤처투자 등 운용자산(AUM)이 1조 원을 넘는 대형사들과 함께 캡스톤파트너스, HB인베스트먼트 등 중소형 VC들도 도전장을 던졌지만, GP 자격을 얻는 데 실패했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트랙 레코드가 풍부한 대형사들이 유리한 구조”라며 “GP 선정에 있어 평가 기준 자체가 중소형사를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선정된 LB인베스트먼트는 3000억 원 규모의 ‘엘비넥스트퓨처펀드’를 조성 중이고, 아주IB투자도 2000억 원 규모의 ‘아주 좋은 벤처펀드 3.0’을 준비 중이다.

“대형·중소형 분리된 리그 필요”

문제는 이러한 출자구조가 벤처생태계의 다양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VC 대표는 “대형사만 배제하는 것은 역차별일 수 있기 때문에, 대형·중형·소형 리그를 나눠 평가하고 출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며 “결국 공정한 기회가 보장돼야 전체 생태계의 수익률도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자 사업에서 Co-GP(공동 운용) 전략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구조 역시 중소형 VC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요소로 꼽힌다. Co-GP는 하나의 펀드를 둘 이상의 VC가 공동 운용하는 방식으로, 최근 벤처업계에선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펀드레이징 환경이 악화되면서 공동 운용을 통해 자금 조달의 부담을 나누는 방식이 선호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기금과 공제회 등 주요 출자자(LP)는 수익률 중심의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며 Co-GP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LP 입장에선 의사결정 지연이나 책임 소재 문제로 인해 공동 운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결국 단독 자금매칭이 가능한 대형사만 선택하게 되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VC 관계자도 “자금의 수혜자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민간자금과 모태펀드를 같은 선상으로 보고 동일한 기준을 요구할 순 없다”면서 “수익률을 생각하더라도 다양한 펀드에 나눠 투자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결국 중요한 건 출자금 자체보다 그 자금을 쓸 수 있는 주체가 누구냐는 점”이라며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 대형사 중심의 생태계가 굳어지게 되고, 이는 혁신적인 초기 기업 발굴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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