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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인력 상황은 더 열악하다. 전국에 소아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단 69명. 그마저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지방 병원 중에는 소아암 다학제 진료 체계를 갖추지 못한 곳이 많고 어떤 병원은 전임의 한 명이 모든 환자를 맡는 현실이다. 미국의 관련 전문의 수가 약 2700명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상황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소아암은 성인암에 비해 조기 발견이 어렵고 초기 증상도 비특이적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대부분의 병증이 희귀하고 복잡한 양상을 띄다 보니 충분한 임상 경험과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오진이나 진단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국내 의료 현장처럼 소아암 발병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서는 이러한 격차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예를 들어 조직병리 이미지에서 악성 여부를 자동으로 분류하거나 환자 개별 상태에 맞춘 글로벌 치료 가이드라인을 추천하는 기능은 AI가 임상적 가치를 가장 빠르게 입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기술적 진보와 정책적 의지가 교차하는 시점이다. 한국 정부는 ‘AI 기반의 기술 혁신’과 ‘의료 격차 해소’를 핵심 국정 과제로 채택했다. 지금이야말로 그간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소아암 환아들의 치료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양산부산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제주대병원 등 지방 거점 병원과 협력해 ‘니드 키즈’(Need Kids)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이는 단순한 지원 사업이 아닌 국내 의료진의 치료 계획 수립을 AI 기술로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시도다. 실제로 양산부산대병원 내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RMHC)에서는 소아암 환아 가족을 위한 거주 및 심리적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소아암 분야는 단순히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기술 발전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기술이 진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면 시장 규모가 아닌 영향의 크기로 판단 기준을 전환해야 한다.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는 전제는 결국 기술을 얼마나 포용적이고 공정하게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다. 진단 기술이 수도권 병원에만 최적화해 있거나 임상 알고리즘이 대규모 데이터 중심의 성인 질환에만 편향해 있다면 기술은 오히려 기존의 불균형을 심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기술이 의료 형평성을 바로잡는 도구로 기능해야 할 때다. 이는 기업이 기술을 통해 어떤 미래를 지향하는가를 가늠하는 본질적 질문이기도 하다.
기술은 중심에서뿐만 아니라 가장 도움이 필요한 가장자리에서 더욱 절실하게 작동한다. 의료 격차가 생존 가능성을 좌우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기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변화의 출발점을 수도권뿐만 아니라 의료의 경계에서 치료가 절실하게 필요한 지방까지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을 갖춘 민간 중심의 해법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작지만 단단하게 이미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