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철강업계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가 무역 불공정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무작정 높은 관세를 매길 경우 자칫 무역갈등을 촉발할 위험이 있는 만큼 비관세 규제 조치 등 보다 정교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中日 철강재 수입 비중 92%
17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일본으로부터 1352만톤(t)의 철강재가 수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1433만t)대비 약 6% 감소한 수치이지만, 2020년 1077만t이 수입된 것과 비교하면 큰 폭 증가한 것이다. 특히 전체 수입 물량에서 중국·일본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87%에서 지난해 92%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는 불공정 무역 행위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후판에 이어 열연강판, 도금·컬러강판에 이르기까지 반덤핑 제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철강업계가 그만큼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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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왜곡 우려…갈등 유발 우려도”
하지만 시장에서는 무조건적인 관세 부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반덤핑 조치는 국내 철강업체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평가되지만, 업계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이 지난해 12월 무역위에 중국산·일본산 열연강판의 저가 공급에 국내 철강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반덤핑 제소를 하자, 열연강판을 사용해 완제품을 만드는 제강사들도 수입산 도금·컬러강판에 대한 관세 부과를 요청하고 나섰다.
열연강판을 소재로 후공정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관세 부과 시 원료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현재 열연강판의 경우 국내산은 t당 80만원대 초반, 수입산은 t당 70만원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입산을 모두 국내산으로 대체할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단순 계산 시 2000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관세 조치에 따른 상대국과의 관계 역시 고려해야 할 변수다. 일본은 우리나라 3대 철강제품 수출 대상국 중 하나이며, 한국과 일본은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CP)에 따라 거의 모든 철강 제품을 무관세로 거래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 철강사의 일본 수출 총 규모는 36억9660만달러(약 5조3808억원)에 달한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일본 철강 연맹 이마이 정 회장(일본제철 사장 겸 COO)은 정례 기자 회견에서 강재 수입량이 증가하고 있는 문제를 언급하며 “반덤핑(AD), 세이프가드(SG) 이외 여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는 자칫 양국 간 무역갈등으로 번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응 전략에 대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무역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비관세 규제를 적극 활용해볼 만하다고 조언한다.
일본의 경우 일본 내에서 판매되거나 사용되는 철강재 대부분은 일본공업규격(JIS)인증을 요구받고 있다. 수출업체는 이를 위해 일본의 지정 기관에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도네시아나 인도 또한 엄격한 품질 기준을 설정해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는 무역규제 조치뿐만 아니라 내수시장 확대, 정책 지원 등 국내산 철강 수요를 늘릴 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공기관 및 국책 사업에서 국산 철강재 사용을 우선하도록 법제화해 국내산 사용을 유도하거나 전력비·물류비 절감, 연구개발 지원 확대 등 국내 철강업체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덤핑 관세 부과에 따른 이해득실이 업체별로 달라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더욱이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업계를 보완해줄 수 있는 지원책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