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대미 관세협상에서 농산물 분야의 전략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제 가진 방미 결과 브리핑을 통해서다. 그는 지난달 22~27일의 1차 방미에 이어 이달 4일부터 2차 방미 길에 올라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는 등 관세 협상을 이끌고 돌아왔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 달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가 2주 사이에 두 차례나 미국으로 날아간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개 서한을 통해 8월 1일부터 한국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이미 통보한 상태다.
여 본부장은 “농산물에선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지만 그렇지 않은 건 전체 틀에서 고려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택과 결정의 시간이 왔으며 랜딩존(착륙 지점)을 찾기 위해 주고받는 협상안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도 했다. 시간에 쫒기는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선 농산물 추가 시장 개방과 관련해 어디까지 양보가 가능한지 국내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1기 시절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으로 대미 통상 정책을 총괄한 후 문재인 정부에서도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그의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베테랑 통상 관료가 직접 보고 겪은 대미 협상 최전선의 기류와 국익을 위한 충언을 담고 있다. 미국은 작년 기준 660억달러의 대미 흑자를 낸 한국에 대해 자국 상품 구매 확대와 농산물을 포함한 각종 비관세장벽 문제 해결을 집중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허용과 쌀 시장 개방 확대, 감자 등 유전자변형 작물 수입 허용이 대표적이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분야의 상당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관세가 15% 이상만 돼도 대다수 기업들은 대미 수출을 접어야 할 정도로 벼랑에 서 있다. 관세 협상이 삐그덕댈 경우 안보, 외교 등 다른 한미 관계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농가소득 보전 등 대책 마련과 설득, 내부 조율을 통해 협상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한쪽만 실익을 챙기는 협상은 있기 힘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