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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득 칼럼]이진숙 후보자의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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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득 기자I 2025.07.18 05:00:00
“자유로운 학풍 덕도 있겠지만 바깥 세상에 관심을 덜 갖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지리적으로 정치, 경제의 중심지와 가깝다 보면 학자, 교수들도 외부 일에 신경을 쓰거나 매스컴 접촉을 자주 하게 돼 연구 능률에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요.”

전자, 컴퓨터 관련 공학의 원로학자로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존경받았던 나가오 마코토 전 교토대 총장(1936~2021년).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서 교토대가 어떻게 혁혁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느냐고 물었던 필자의 우문에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 그의 현답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세속적인 인기와 명예, 자리 욕심에 흔들릴 수 있는 도쿄 등지로부터 교토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교수, 학자들이 연구와 씨름하는데 되레 플러스가 됐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의 진단은 ‘거꾸로 가는 나라’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일본이 그래도 기초 과학과 의학에서는 아직 세계 최강국 중 하나로 대접 받고 있는 배경과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런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공부하고 자란 인재들이 더 넓은 학문의 세계로 나가서도 한눈팔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니 과학 강국의 명성이 흔들림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단체 포함)32명 중 교토대를 졸업했거나 교토대와 관련이 있는 교수, 학자는 절반을 넘는다.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14일 시작됐지만 청문회 훨씬 전부터 국민의 관심과 조명을 가장 뜨겁게 받은 인물 중 한 명은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일 것이다. 실정법 위반, 부동산 투기, 자녀 특혜, 부하 직원에 대한 상습적 갑질 등 16명 후보자들의 비리 의혹이 줄줄이 터져 나왔지만 이 후보자의 경우는 특히 정도가 더 심해서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철벽 방어를 공언한 데다 본인도 “청문회에서 소명하겠다”며 계속 딴청을 피워댔지만 본질은 달라질 게 없었다. 보도된 것들만 추려도 논문 중복 게재, 제자 논문 표절, 가로채기 등 학자의 양심과 양식에 먹칠을 한 행위로 가득 차 있다. 오죽하면 전교조는 물론이고 11개 교수·학술단체 연합체인 ‘범학계 국민검증단’까지 나서서 “교육자이길 포기했다”며 사퇴를 촉구했을까. 논란이 확산되고 임명권자에 큰 부담을 안긴 것을 반성한다면 일찌감치 다른 선택을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억울함을 밝히겠다며 만든 자료도 청문회 전 여당에만 배포하는 계산된 행동을 택했다. 16일 청문회에서도 “표절 논란은 학계 상황을 이해 못 한 것”이라며 “자신이 카피 킬러를 돌렸을 땐 표절률이 10%를 겨우 넘었다”는 궁색한 답변을 늘어놓기 바빴다. 민심이 내렸을 평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교육 정책의 최고결정권자요, 연구윤리와 도덕성에서도 모범이 돼야 할 교육부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의혹 논란으로 얼룩진 게 너무도 개탄스럽다. 최종 임명 여부를 떠나 세상을 어지럽힌 일을 내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가 남긴 소득이라면 학자가 벼슬길에 나가려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몸과 마음가짐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뿐이다.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 서울대 명예 교수는 “학문을 한다는 것은 전투와 같다”고 말했다. 조규익 숭실대 명예 교수는 “논문 표절은 학문 테러”라며 지식 도둑질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학문과의 씨름에서 반칙을 남발하는 학계의 고질적 병폐와 일탈을 꾸짖은 이들 선배 학자의 쓴소리는 이 후보자에게 특히 유효하다. 조선 후기의 대문장가 이덕무 선생에게 학문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돕기 위한 꿈이었다. 명성·자존심을 벼슬과 바꾸는 학자, 쪼가리 지식과 자기 자랑뿐인 졸저를 앞세워 출판기념회라며 후원금 모으기에 바쁜 오늘의 지도층에게 그의 염원은 잠꼬대나 마찬가지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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