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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우리’가 각별하게 등장하는 건 그 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갈등 양상들이 극적으로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갈등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를 하나의 범주로 세우면 그 카운터파트로서의 적 혹은 목표도 세워진다. 드라마가 어떤 문제의식을 극적인 서사를 통해 해결하는 과정을 담는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를 어떻게 세우는가는 그 작품의 주제와 연결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다소 뜬금없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건 최근 들어 필자가 실제로 경험한 문화의 현장에서 이 ‘우리’의 범주와 의미가 과거와 점점 달라지고 있는 그 변화의 양상을 말하기 위함이다. 지난 4월 고양에서 열린 콜드플레이의 내한공연은 내게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막연히 우리라고 하면 ‘우리나라’, ‘우리말’, ‘우리민족’ 같은 그런 범주의 것으로 여기던 내게 그의 공연은 그간의 사고가 얼마나 편협했는가를 일깨웠다. 입장할 때 나눠준 손목밴드를 차고 스타디움에 들어가자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 심지어 러시아에서 온 관객 등 공연장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로 가득했다. 국내 관객들과 그들은 국적이나 언어, 세대, 성별 같은 것과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외치는 콜트플레이라는 하나의 취향이자 지향으로 뭉쳤다. 시시각각 같은 색깔로 물드는 손목밴드는 이들을 순식간에 ‘우리’로 묶어냈다.
이런 ‘우리’의 개념 변화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같은 뉴미디어에서 더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폭싹 속았수다’ 같은 심지어 제주도 사투리를 제목으로 하는 이 지극히 한국적인 작품에 대한 지구 반대편 남미에서의 열광적인 반응이 그렇다.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한 마트에서 마지막회를 다 같이 모여 시청하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들은 아마도 그곳에서 ‘새로운 우리’의 공동체를 경험했을 것이다. 즉 시공간적인 경계가 우리의 범주를 나누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대신 그 경계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만들어지는 새로운 우리가 곳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문화 소비의 새로운 경향들을 들여다봐도 이러한 ‘우리’에 대한 새로운 범주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 3월 메가박스에서 단독개봉해 90만 관객을 돌파한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마니아들의 별난 취향 정도로 치부해 대놓고 즐기지 못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이제 묵은 한일관계의 갈등과는 별개로 최근 국내 팬들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K콘텐츠만을 봐야 한다고 여기던 그 관점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일본드라마, 중국드라마 팬층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과거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의 ‘우리’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이러한 타국 문화 향유는 부적절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민족과 국가보다 취향의 관점에서 ‘우리’라는 개념이 새롭게 세워지고 있는 요즘, 이건 부적절한 게 아니라 다양하고 풍요로운 소비가 아닐 수 없다.
한때 메인컬처와 서브컬처를 나눠서 우리를 범주화하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 같은 과거 서브컬처로 치부됐던 문화가 이제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오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메인과 서브를 나누던 시대 서브로 구획된 ‘우리’는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당대에는 어떻게든 자신의 취향이 서브가 아닌 메인이라는 걸 애써 드러내려던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와 취향의 다양성이 시대정신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재, 서브와 메인 개념은 그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삶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범주화한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틀에 들어가고 학교와 사회를 거치며 무수한 ‘우리’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우리와 남을 구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가 남보다 낫다는 차별적 시선을 던지는 데서 생겨난다. 우리가 양적으로 많아 메인을 차지하면 소수인 서브(그들도 누군가의 우리일 게다)를 차별하던 시절은 점점 유물이 돼가고 있다. 미디어 변화가 만들어낸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우리. 그것은 콘텐츠 소비만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사회가 앞으로 지향해 나가야 할 ‘우리’가 아닐까. 그러니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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