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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가난은 개인 탓일까, 나라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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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06.10 05:00: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우리 속담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 했지만 물가가 쉬지 않고 뜀박질하며 흔들리는 경제 혼란은 개개인보다는 나라 책임이 상당히 크다. 잠재성장률 정체로 공급능력은 지지부진한데 생산량보다 통화량이 더 많이 늘어나면 물가는 어쩔 수 없이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풀면 어쩔 수 없이 화폐가치가 떨어져 물가 상승을 이겨내지 못하는 소시민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한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통화팽창에 따른 물가 불안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무너트리는 공공의 적이다. 저성장 시대 만성 인플레이션은 민주주의 근간을 시나브로 흔들리게 한다.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은 “세상에는 악한 인간들이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범죄보다 그릇된 논리에 젖은 인간들이 멋모르고 저지르는 폐해가 더 심각하다”며 원칙 없는 통화팽창의 해악을 경고했다. 정부가 돈을 풀 때는 선심 쓰듯 희희낙락하지만 뒤이어 닥치기 마련인 물가 불안 고통은 빚질 능력 없는 서민층부터 뒤집어쓴다. 물가가 불안할 때 빚을 지면 화폐가치가 떨어질수록 빚의 무게가 줄어드니 욕심을 내고 빚을 늘리다가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먼 생각 없이 나랏돈을 제 돈인지 남의 돈인지 분간치 못하고 화수분처럼 써대면 개인의 근검절약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지 못하는 유동성 팽창은 저성장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까지 부추길 위험을 키운다. 임시변통 경기부양을 반복하다 보면 소시민들의 근검절약 노력은 어느새 허공의 메아리로 변해 간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오래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포퓰리즘 악령이 덮치기 마련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단기 경기부양을 반복하는 상황이다 보니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여기저기 어른거린다. 욕심 많은 정부가 모두를 책임질 듯 사탕발림으로 생색을 내려다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국민경제를 질곡으로 몰아갈 우려가 있다.

생산성 향상 없이 단행하는 통화 증발은 맹물을 부을수록 국이 싱겁게 되는 이치와 같아 국가가 발행한 화폐의 가치를 때로는 시나브로, 때로는 사정없이 떨어트린다. 그 정도가 심하고 오래가면 민생을 위협하고 이는 국가에 대한 신뢰 저하로 연결돼 다시 민심을 흔든다. 부자들은 타국 화폐를 선호하고 고급 인력 해외 유출이 늘어나며 국가경쟁력이 흔들린다. 오늘날 한국경제는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저하하는 등 저성장 기조로 진입했는데 기초 체력을 확충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률 회복을 서두르다가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국민경제를 장기간 무기력 증후군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자칫하다가 일을 그르쳐 수습에 더 큰 시간과 비용이 들 수 있으니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새겨 볼 때다.

화폐가치가 안정돼야 돈이 투기거래 같은 엉뚱한 곳으로 몰리지 않고 생산활동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저성장·고물가 아래 유동성 팽창은 화폐가치만 타락시켜 서민들의 근검절약 노력을 헛되게 해 시장경제를 무력하게 만든다. 물가가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이 뛰어오르면 열심히 노력해도 생활 수준 향상이 어려워져 사람들이 맡은 일에 충실하기보다 엉뚱한 데를 기웃거리게 돼 생산성이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물론 시민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는 초인플레이션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지, 민주주의 원칙이 흔들려 재정적자 같은 통화 증발로 물가가 불안해지는지, 그 선후 관계는 단정하기 어렵다.

정부가 제 돈 쓰듯 생색내며 나랏빚을 늘려가다가는 어쩔 수 없이 물가 불안을 초래해 민심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물가 불안이 지속하면 저소득층일수록 살기가 어려워져 인권을 유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만연하는 사회, 포퓰리즘 국가에서는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어 민주주의의 뿌리가 약해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건강하게 성장·발전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은 국가가 발행한 화폐가치를 안정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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