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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물론 바이든 전 대통령까지도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친 이유다. 반도체, 철강, 전기차 공장을 미국에 다시 유치해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제조 거점은 이미 중국, 베트남 등으로 다변화되어 있고, 리쇼어링(제조업 회귀)은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 내 인건비, 인프라 비용, 공급망의 복잡성은 여전히 큰 장벽이다.
결국 미국은 전략을 수정했다. ‘수입 억제’와 ‘내수 확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산업이 바로 관광산업이다. 외국인의 미국 방문을 늘려 내수 소비를 자극하고, 서비스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전략적 접근이다.
미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을 찾은 외국인은 약 6660만 명. 이들이 미국 내에서 소비한 금액은 무려 2620억 달러(약 373조 원)에 달한다. 항공, 호텔, 외식, 쇼핑, 교통 등 미국 서비스업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수익 창출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가진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일정 부분 보완하는 ‘외화 유입형 소비모델’이다.
한국인 관광객의 역할도 컸다. 미국관광청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한국인의 미국 방문객 수는 약 237만 명에 달했으며, 이들의 소비 규모는 약 74억 달러(약 10.5조 원)에 이르렀다. 2023년에는 약 170만 명이 미국을 다시 찾으며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한국인 관광객은 항공, 숙박, 쇼핑, 식음료,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한다. 미국 내 서비스업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핵심 소비층인 셈이다. 여행산업이 미국의 전략적 관세정책에 맞설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자국의 보호무역을 강화하며 한국 수출 산업을 압박할수록 우리는 관광 지출국으로서의 전략적 위치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실전에서 활용했다. 2016년 ‘한한령’(限韓令)은 단순한 문화·여행 제재가 아니라, 자국민의 해외소비를 통제하며 외교적 불만을 표출한 대표적 사례다. 그 결과 한국은 수조 원대 피해를 입으며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은 더이상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외교, 경제, 통상 전선에서 강력한 레버리지로 기능하고 있다. 해외여행 수요를 어느 지역에 집중시킬지, 어느 목적지를 전략적으로 유도할지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외교적 메시지가 된다. 그만큼 우리의 여권과 신용카드는 강력한 외교적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