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일부 청년세대는 불만족스럽다. 미래세대에 부담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연금개혁 논의의 중심에 서 있는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호도된 사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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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의가 극비리에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일부 청년단체는 연금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가 청년과 미래세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까지 나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다단계 금융 사기인 ‘폰지 사기’와 다를 바 없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석재은 교수는 “모수개혁 이후 수지균형보험료율이 21.2%인데 13%만 내고 43%를 받는 건 어떤 방식이든 청년에겐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수지균형보험료율은 적자를 내지 않고 한 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당해 가입자가 내야 하는 이상적인 보험료율이다. 현재는 보험료 9%를 내고 40년이 지나면 소득대체율 40%만큼 받는다. 역으로 40%를 받으려면 19.7%까지 올려야 한다. 내년부터 소득대체율 43%가 적용되면 내는 돈은 21.2%로 상향해야 수지구조가 맞는 것이다. 이번에 13%로 올랐음에도 21.2%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건 청년세대에게도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석 교수는 “이런 구조가 가능한 건 1200조원에 이르는 적립금 때문”이라며 “이건 부모세대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후 상당 기간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받아 가진 않은 기성세대의 자금이 기초가 됐다. 이 기금의 누적 운용 수익은 738조원으로 기금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이 기금운용수익률은 현재 4.5%인데 앞으로 5.5%까지 상향하면 연금 지속가능성은 2071년까지 확보할 수 있다. 석 교수는 “쌓아둔 돈을 헐지 않고 ‘더 내고 더 받기’ 개혁을 이룬 건 대단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만약 이번 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2056년에 기금이 모두 고갈돼 미래 청년은 그해 보험료를 거둬서 바로 지급하는 부과식을 적용받아 수익의 30%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는 기금없이 그 해 보험료를 거둬서 바로 지급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번 개혁으로 청년세대의 과도한 부담을 선제적으로 막은 데다 전세대가 조금씩 더 내고 더 많이 받는 구조를 만들었으니 한 번에 두 가지 이득을 얻었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청년에겐 1타2피의 개혁이다. 과도한 피해의식을 안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실 중장년층에게 연금개혁은 불필요했다. 기금이 모두 소진되는 2056년은 베이비붐세대가 대부분이 퇴장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들이 모아둔 기금을 모두 쓰고 가는 구조인 셈이다. 석 교수는 “중장년이 오롯이 ‘자녀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라는 책무에서 (개혁에) 같이 동참한 게 아니겠나. 이처럼 연금은 세대 간 배려로 돌아가는 구조”라며 세대 간 갈라치기를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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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혁은 끝이 아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꾸려져 그동안 미뤄뒀던 구조개혁을 서두를 예정이다. 하지만 구조개혁은 간단치 않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초·퇴직·개인연금 등 완전히 다른 제도들을 아울러 다층적인 노후 소득보장제도를 만드는 작업이다. 모수개혁 못지않게 기나긴 가시밭길이 예상되고 있다. 석 교수는 “그래도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한 구조개혁 필요성과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까지 포함돼 사실 낸 만큼 비례해서 못 받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국민연금 제도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소득재분배기능을 줄이고 소득 비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봤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 완화를 위해 2008년에 도입됐다. 노인 중 소득인정액이 하위 70% 이하인 사람들 대상으로 단독 가구 기준 최대 34만 3510원(부부 가구는 최대 54만 9600원)씩 정액급여로 준다. 처음 제도 도입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노인의 절반가량이 소득이 전체 중위소득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인의 소득과 자산 수준이 높아지며 기초연금 수급자 중 취약계층이 아닌 노인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 2015년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은 기준 중위소득(국내 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가구의 소득) 대비 절반 이하였는데 2025년에는 93%로 증가했다. 추세대로라면 이 비율은 2030년에 107%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 교수는 “현재 중위소득이 228만원인데 중위소득 이상의 소득을 가진 노인인구가 늘고 있다”며 “중위소득 이상 소득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는 건 제도의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노인빈곤 해소를 위해 도입했지만 두루뭉실한 기준으로 정작 생계가 어려운 노인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현실이다. 그는 “노인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이들을 두텁게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며 “아울러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투입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선택과 집중이다. 대상자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지급액을 늘리자는 것이다. 그는 “기초연금의 이같은 재편이 노인빈곤을 집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여기에 국민연금 수급연령 상향조정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당시 기금 고갈을 늦출 총 18가지 시뮬레이션 결과가 공개됐는데 당시 내는 돈 인상안과 함께 목표수익률 상향조정, 연금 지급개시연령 상향 등도 제시됐다. 하지만 모수개혁 과정에서 지급개시연령 상향 등이 제외됐다.
당시 연금 지급개시연령은 노령연금의 지급개시연령이 65세가 되는 2033년 이후 같은 스케줄로 2038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늘려 2048년 수급개시연령은 68세가 된다. 다만 60세 은퇴 이후 소득공백 기한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노동시장 개선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석 교수는 “보험료를 제때 올리고 연금수급연령을 조금 뒤로 미루는 것만 결합해도 울트라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도 연금이 지속 가능하다는 해법을 보여준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러 논의를 포함한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석 교수는 “연금개혁은 세대 간 공존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며 “이번에 구조개혁 논의가 들어가면 (이전에 제시된 내용 등을 포괄해) 마스터플랜의 끝판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967년 서울 △동국대부속여고(구 명성여고)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 학사 △이화여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현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 △한국노인복지학회 회장 △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사회보장위원회 위원 △21대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