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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성장률이 역성장을 기록할 정도까지 악화할지는 모르겠지만 관세 부과의 부정적 효과는 컨센서스보다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대로 4월부터 보편관세를 강행할 경우 관세가 붙기 전에 수입을 앞당기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수입의 증가는 순수출(무역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 GDP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당겨 집행한 1분기 수입은 2분기 순수출에 긍정적인 기저효과로 작용해 한 해 전체로는 조삼모사일 수도 있지만 ‘GDP 나우’가 보여주고 있는 마이너스 성장은 전망기관들의 예상치 총합인 시장 컨센서스와 차이가 크다.
최근 미국 증시 조정의 원인으로 관세부과와 인플레이션, 경기둔화의 조합이 거론되는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다만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꼭 순환적 경기 사이클만을 반영하고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는 경기 사이클과 무관한 비가역적 증가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AI 혁명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는 엔비디아 주가가 2023년부터 10배 넘게 상승할 수 있었던 동력도 이런 낙관론에 기대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조정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1조492억달러가 감소(1월 6일 3조6595억 달러→3월10일 2조6103억 달러)했다. 경기후퇴의 결과로 엔비디아의 이익 전망치가 얼마나 줄어들어야 1조 달러 이상의 시가총액 감소가 설명될 수 있을까. 엔비디아의 2024년 당기순이익은 342억 달러고 2025년 전망치는 835억 달러다. 이 정도 이익 규모에서는 손익 변화에 대한 다소의 기대치 변화로 1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시가총액이 이미 당장의 이익 전망치 변화와 무관하게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충분히, 혹은 과하게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빅테크 주식의 조정은 이익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거품이 빠지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아무리 비싸게 사도 좋을’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자산’을 ‘적정한 가격’에 사야 투자의 승률을 높일 수 있다. 지난 10일 기준 S&P 500 지수는 고점 대비 8.6% 하락했다. 2023년과 2024년에 모두 20%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조정 정도로 가격 부담이 의미있게 완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다. S&P 500 지수의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22배에 달하고 있다. 1985년 이후 PER 20배 이상에서 S&P 500 지수에 투자했을 때 1년 후 성과는 연평균 0.3% 상승에 불과했고 3년 후 성과는 연율 -0.9%, 5년 후 성과는 연평균 -1.2%를 기록했다. 반면 낮은 밸류에이션에서 시장에 진입한 경우에는 성과가 좋았다. PER 10배 미만에서 시장에 참여한 경우 1년과 3년, 5년 후의 연평균 S&P 500 지수 등락률은 26.1%, 12.6%, 12.2%를 기록했다.
주가 전망을 비롯한 대부분의 예측 행위는 대부분 변화를 불러오는 구체적인 계기, 즉 트리거(trigger)를 찾는 데 맞춰진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 ‘물가가 너무 높게 오르면’, ‘트럼프가 관세를 올리면’ 등등의 주장은 모두 변화를 일으키는 트리거에 집중하는 화법들이다. 최근의 미국 증시 조정도 ‘트럼프의 관세부과에 대한 공포가 주가 조정을 불러왔다’는 인과율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에 큰 영향을 받는지라 선명한 원인-결과의 조합은 설득력을 높인다.
주식시장에서 작은 변화에도 민감히 반응할 수 있는 임계 상태는 밸류에이션으로 판단 내릴 수밖에 없다. 밸류에이션이 싸면 웬만한 악재에도 주가가 하방경직성을 나타내다가 장기적으론 상승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고 밸류에이션이 비싸면 작은 충격에도 주가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관세부과에 미국 증시가 더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조정 원인은 주가가 장기적으로 많이 상승했다는 사실, 그 자체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