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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건축물의 주인은 국민이다[민서홍의 도시건축]

최은영 기자I 2025.04.18 05:00:00

한해 21조 예산 투입해 건설, 국가경제 든든한 기둥이지만
지자체장 치적 쌓기에 오용…공공건축 제도·문화 바꿔야

세운상가(사진=연합뉴스)
[민서홍 건축가] 우리나라의 공공건축물 건립 현황을 살펴보면 놀라운 수치를 마주하게 된다. 연간 약 21조원, 국가 예산의 2.95%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공공건축물 건립에 투입되고 있다. 이는 평균 1000㎡ 규모의 건물 5000여동을 신축하는 규모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건축물이 과연 국민의 자산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들어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공공시설물을 철거하거나 섣불리 용도를 변경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만 해도 그 예가 적지 않다. 300억원을 들여 건립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개관 5년 만에 용도변경 위기에 놓였고 1100억원을 투입한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개통 2년 만에 철거가 결정됐다. 600억원을 들인 서울로7017 공원도 철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490억원을 투입한 노들꿈섬은 또다시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는 비단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주시의 경우 97억원을 들여 국제공모로 선정한 신청사 설계안을 새 시장 취임 후 전면 변경해 총 사업비 3039억원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성남시에서는 역사박물관으로 기획한 사업이 새 시장 취임 후 과학박물관으로 변경되면서 당초의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

공공건축물은 그 정의상 일반 시민에게 자유롭게 개방되며 공공의 이익에 기여해야 하는 시설이다. 소유주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일지라도 실질적인 사용주체는 일반 시민이며 철저히 공익에 부합하도록 건설하고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사업 취지가 훼손되고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의 심각성은 공공건축물이 우리나라 건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공공건축물은 연간 신규 건립 건축물 총 건수의 4.17%, 연면적의 7.32%를 차지하지만 총 공사비 측면에서는 12.46%를 차지한다. 민간 아파트를 제외하면 그 비율이 더욱 높아져 연면적 17.74%, 공사비는 27.18%에 달한다. 즉, 우리나라 건설시장의 공공건축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것이다. 더욱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업 부가가치가 2022년 기준 약 15.5%를 차지하는 등 건설업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고려하면 공공건축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정치인들의 치적 쌓기의 도구로 전락한 공공건축물의 현주소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제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때다. 공공건축물은 특정 정치인이나 행정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자산이다. 따라서 공공건축물의 기획, 설계, 시공, 운영 전 과정에 걸쳐 시민참여를 확대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시계획과 연계해 추진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장이 바뀌더라도 기존 사업의 취지를 존중하고 불필요한 변경이나 철거를 최소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공공건축물의 품질 향상을 위해 설계공모 제도를 개선하고 시공 과정에서의 감리를 강화해야 한다. 완공 후에도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평가를 통해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용도를 변경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21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매년 공공건축물에 투입되고 있다. 이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소중한 세금이다. 이 예산이 정치인들의 치적 쌓기에 낭비되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쓰여야 한다. 공공건축물이 국민의 자산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식 전환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건축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공공건축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치와 비전을 실현하고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7017서울로(사진=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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