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정치적 밈(meme)의 두 얼굴

최은영 기자I 2024.12.06 05:00:00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12월 3일 두려운 밤이었다. 어린 시절 그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느낀 두려움과는 달랐다. 영화에서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감을 현실에서 강하게 체험하는 느낌이랄까. 그날 이후 당시 상황을 풍자한 짤(짧게 편집한 영상이나 사진)이 무수히 많이 생성되고 확산했다. 전직 대통령 이미지에 현직 대통령을 오버랩해 희화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현대사회에서 정보 소비는 뉴스 기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과 소셜 미디어의 보편화로 짧고 직관적이며 시각적인 콘텐츠인 밈(meme)이 정치적 의사소통의 중요한 매개체로 떠올랐다. 특히 밈을 통해 정치권력을 희화화하는 현상은 정치적 논의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권력의 평가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가장 큰 특징은 단순화다. 밈은 유머와 풍자를 통해 복잡한 정치적 메시지를 단순화하고 빠르게 확산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대중의 관심을 끌고 특정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정치적 인식을 형성하거나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어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이미지는 밈으로 대중의 시선에 각인됐다. 트럼프의 발언과 행동은 과장된 밈으로 재구성돼 유머의 대상이 됐고 이는 그의 비주류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를 강화했다. 반면 클린턴은 ‘낡은 정치 엘리트’라는 이미지가 밈으로 부각됐다. 이는 정치적 논의의 무게를 줄이고 감정적 반응을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밈으로 정치권력이 희화화하는 경우도 잦은데 2020년 코로나19 봉쇄 정책을 발표할 당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대표적이다. 당시 그의 우스꽝스러운 머리 모양과 행동은 자주 밈으로 소개됐는데, 그런 가벼운 이미지는 그가 중요한 정책을 발표할 때조차 대중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 논란이 된 ‘윤석열차’도 맥락이 유사하다.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이 만화는 정치적 비판의 범위를 넘어 대통령 개인의 이미지를 희화화함으로써 정치적 권위에 타격을 입혔다. 이러한 희화화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일부로 작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대중의 감정적 반응에만 초점을 맞춰 정치적 논의의 깊이를 저해할 위험이 있다.

또한 밈은 특정 정치인의 단점만을 강조해 대중의 과도한 혐오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 이는 권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고 대중의 정치적 신뢰를 전반적으로 약화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렇다고 희화화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을 밈으로 풍자하는 것은 권력 남용을 감시하고 대중의 관심을 정치로 끌어들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에서는 알렉세이 나발니의 지지자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풍자하는 밈을 만들어 독재적 권력의 문제를 알리는 데 사용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국가에서 저항과 정치 참여의 중요한 수단이 됐다. 한편 홍콩 시위에서도 ‘우산 혁명’과 관련된 이미지와 밈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며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밈은 대중이 복잡한 정치적 이슈를 쉽게 이해하고 권력의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도록 돕는 도구로 기능했다.

이렇듯 밈은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높이고 권력에 대한 비판을 유도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권위의 지나친 약화, 정치적 논의의 피상화, 감정적 반응의 과잉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정치적 밈은 그 자체로 권력 감시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지만 대중과 미디어는 이 도구가 민주적 토론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쓰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밈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더욱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다만 그 사용 방식이 무조건적 희화화와 비판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