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학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의 독립성 및 정부 보조금 문제로 크게 대립하고 있다. 발단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가자전쟁 발발 이후 생긴 대학 내 반(反)유대주의다. 공화당을 지원하는 미국의 유대계 영향에 따라 트럼프 정부는 그런 대학에 반유대주의 근절을 요구했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대학 보조금을 끊겠다고 압박해 왔다. 트럼프 정부가 동결 압박한 지원금은 하버드대에만 23억달러(약 3조 2000억원)에 달한다. 비슷한 사정의 미국 명문 대학이 많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정부에 반기를 든 하버드대의 반대 이유다. 앨런 가버 총장은 반유대주의 근절 방안을 담으라는 학칙 개정 요구에 대해 하버드 대학 구성원들에게 ‘수용 불가’ 서신을 보냈다. “어떤 정권이 집권하든 정부가 사립대에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입학시키고 채용하며, 어떤 연구를 할지 지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400년 전통의 하버드뿐 아니라 미국 민간 대학의 독립 전통과 학문적 성과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다만 보조금 문제는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 원론적으로 국공립도 아닌 하버드대가 대학의 자율과 독립성을 외치려면 어떤 형태의 정부 보조금도 받지 않는 게 맞다. 연구를 내세워 대학에 주는 각종 지원금과 보조금은 누가 뭐래도 대학이 누리는 특혜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막대한 기부금 수입에 힘입어 대학 재정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하버드대조차도 정부 보조금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대학의 ‘자금줄’이다. 이 문제에서 하버드대는 어려운 선택을 했다. 하버드가 끝까지 독립 의지를 관철할지, 또 컬럼비아 등 비슷한 처지의 다른 대학들은 어떤 결정을 할지 세계가 지켜볼 관심사다.
이 상황을 국내 대학들은 어떻게 볼까. 보조금 의존은 한국 대학이 더해 정부 지원 없이는 바로 파산할 대학도 적지 않다. 정부가 당근과 채찍처럼 휘두른 각종 보조금으로 상아탑의 독립은 남의 나라 일처럼 됐다. 대학도, 정부도 반성하며 ‘대학의 본질’을 돌아볼 때다. 특히 대학 발전은 외면한 채 선거철마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은 하버드대의 노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