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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은 정말 실현 가능한가.’
대통령의 공약은 이상향을 보여주는 그림이지만 이상만으로는 나라를 움직일 수 없다. 현실에는 제약이 있고 재정이 있고 법과 제도와 세계적 질서의 한계가 있다. 유권자의 역할은 이 ‘한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리더를 선별하는 데 있다. 단지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력과 시스템을 갖춘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단지 한 사람을 뽑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5년이라는 시간의 방향을 결정짓는 행위다.
공약은 실현의 설계도가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화려한 비전만 있고 예산, 입법, 실행 전략이 없다면 그것은 그저 선거용 말잔치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간 실망해온 많은 정치인의 약속이 왜 실현되지 않았는지를 되짚어보면 ‘할 수 없었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실제 사례로 들어가 보자. 이번 대선에서 두 명의 유력 후보가 대표적으로 내건 공약을 살펴보면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뚜렷해진다.
국민의힘 후보는 ‘귀족노조 개혁’,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청년 고용 확대’를 강하게 주장한다. 방향성과 명분은 분명했다. 그러나 현실적 장벽은 높다. 노동계와의 타협 없이, 국회의 협조 없이, 관련 법률 개정 없이 이 정책을 실현하긴 어렵다. 명분은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은 공약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본소득 도입’, ‘청년수당’, ‘지역화폐 강화’ 등 직접적이고 매력적인 복지 공약을 앞세웠다. 단기적으로는 유권자에게 매력적일 수 있지만 문제는 막대한 재정 소요다. 연간 50조원이 넘는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현실적 계획 없이 국가 부채를 무한정 늘리는 것은 오늘의 이득을 위해 청년 세대를 피눈물나게 하는 잔혹한 짓이다. 결국, 실현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이 두 사례는 말해준다. 유권자가 봐야 할 것은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치는 말이 아니라 실행 설계도이며 공약은 그 설계도를 유권자에게 보여주는 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공약을 걸러내야 할까. 다음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진정성. 이 공약이 지금 꼭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특정 지지층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인지 그 진정성을 확인해야 한다.
둘째, 실현 가능성. 국회의 동의, 예산 확보, 행정 역량 등 구체적 실행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그저 말뿐인 공약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지금껏 그래왔 듯이….
셋째, 지속 가능성. 단기 퍼주기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인지 재정과 제도의 안정성은 충분한지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이 기준을 중심에 놓고 보면 공약은 훨씬 명료해진다. 우리는 선심성 발언과 국가 전략을 구분할 수 있고 정치인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 후보의 말은 다 ‘약속’이다. 그러나 모든 약속이 같은 무게를 지니지는 않는다. 말을 하는 사람의 실력, 주변 인재, 정치적 지형, 실행 계획의 구체성, 그동안의 신뢰도에 따라 약속의 무게는 달라진다. 그래서 유권자는 약속의 내용을 보는 동시에 그 약속을 하는 사람의 ‘이행 능력’도 함께 봐야 한다. 그리고 선택해야 한다. 지금 이 사람에게 나라의 5년을 맡길 수 있는가. 정치가 무너질 때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신뢰’가 먼저 무너진다. 그 신뢰는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후보자의 말을 ‘말’로 보지 않고 ‘계획’으로 볼 때 다시 세워질 수 있다.
잊지 말자. 유권자가 꼭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꿈’과 ‘이상’이 없다면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인식조차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그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에게는 ‘비전’이 있는가, 이상과 현실을 연결할 수 있는 통찰이 있는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책임감은 있는가.
꿈과 이상, 이상과 현실, 옳고 그름, 오늘과 다음 세대에 대한 그림이 없는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리더를 선택할 때 반드시 자문해야 할 근본적인 기준이다. 왜 우리는 리더를 뽑는가. 단지 당장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기 위함이라는 점을 유권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말이 아니라 실현의 시스템이다.
하긴 그런 줄 알고 선택하고 5년 후엔 새 반장을 뽑으면 그만이고, 내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 도널드 트럼프의 꿈이 부럽다. 하지만 분하고 억울하게도 ‘꿈의 씨앗’을 심는 리더는 없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경구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하다. 대통령 리콜제는 없다. 우리의 선택은 단 한 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