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중구의 한 SK텔레콤 대리점. 최근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점주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같이 토로했다. SK텔레콤의 유심(USIM) 정보 유출 사태 여파가 고스란히 일선 대리점주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SK텔레콤 해킹 사태 이후 애꿎은 대리점주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기존 가입자 이탈로 보는 손해가 상당한데다가 신규 영업을 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당장 월세, 인건비, 기타 운영비를 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영세 매장이 늘고 있다.
대리점들은 숨통이 트이는 시점을 예상할 수 있게 정부가 신규 영업 재개 기준을 명확히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SK텔레콤에 대해서는 대여금 원금·이자 유예 이외에 실질적인 대리점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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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은 지난 5일부터 전국 2600개 T월드 대리점과 온라인 T다이렉트샵에서 신규 영업을 중단했다.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조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일 이번 해킹 사고로 유심을 교체하려는 가입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SK텔레콤에 유심 물량 공급이 안정화 될 때까지 이동통신 서비스 이용자 신규모집을 전면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유심 물량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추가로 확보한 유심을 번호이동, 신규 가입 고객 개통이 아닌 기존 고객의 유심 교체에 우선 사용하라는 의미다.
신규 영업 중단이 3주간 이어지면서 일선 대리점들은 한계에 달한 모습이다. 2600개 대리점 중 86%가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위탁 대리점이다. 서울 강남구 한 대리점 관계자는 “본사에서 위약금이나 대여금 이자 상환 유예해준다고는 하지만, 장사 자체가 안 되는데 무슨 의미냐”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SKT는 지난 15일 전국 대리점 점주들에게 오는 7월까지 약 3개월간 운영자금 대여금 원금과 이자 상황을 유예한다고 공지했지만 실질적으로 대리점들이 입고 있는 피해를 구제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대학 SK텔레콤대리점협의회 부회장은 “대리점 마다 입장이 다르지만 영업 사원을 여러 명 둔 매장의 경우 인건비는 계속 지출되는데 개점 휴업 상태라 신규 영업을 재개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SK텔레콤에서 타 통신사로 번호이동하는 가입자가 늘고 있는 것도 대리점에 타격이다. 염규호 SK텔레콤대리점협의회 회장은 “KT와 LG유플러스에선 가입자를 뺏어가고 있는데 SK텔레콤은 대리점들은 영업을 못하면서 생사 기로에 놓였다”며 “SK텔레콤도 기기변경은 가능하지만 고객들은 신규가 안되니까 기변도 안되는 줄 알고 유심 변경 이외에는 매장에 오질 않고 있다. 대리점들은 거의 죽을 맛이다”고 토로했다.
박 부회장도 “대리점이 가입자 한명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 10만원을 넘기도 하는데, 이 고객들이 이탈하면 이 투자금이 다 손해가 되어 버린다”고도 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해킹 사고가 알려진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1일까지 SK텔레콤에서 이탈한 가입자는 약 40만명에 이른다. 순감 규모는 35만명 수준으로 나타났는데, 사고 발생 이전인 지난 3월 한달간 1만3000명이 순감 했던 것과 비교하면 27배 늘어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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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영업 재개 시점이라도 짐작할 수 있게 정부가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요청이 나온다. 당초 유심 교체를 위한 재고 확보를 위해 신규 영업을 제한한 만큼, 최근 유심 공급이 대량으로 이뤄지고 있어 재개 시점을 논의할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유심이 대량 입고된 지난 19일부터 유심 교체에 속도가 붙어 하루 30만 건씩 처리되고 있다. 지금까지 총 428만명이 유심을 교체했고, 잔여 대기 인원은 473만명으로 절반 정도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유심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 해소되고 유심 교체 수요가 충족되기 전까진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관은 “아직 약 400만 명의 고객이 유심 교체를 기다리고 있는 만큼 현 시점에서 신규 가입 재개를 논의하긴 이른 것 같다”며 “교체 작업이 100% 완료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영업 재개를 위해서는 SK텔레콤이 고객 불편과 관련된 우려를 해소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대리점들은 SK텔레콤에 실질적인 보상책 마련도 요구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최근 대여금 원금과 이자를 3개월 유예해준 것에 더해 매장당 500만원씩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 보상에 대한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방의 한 대리점 관계자는 “SKT는 신규 영업 해제 시점에 영업 중단과 가입자 이탈에 대한 보상안을 알려준다고 한다”며 “본사와 대리점 간 소통이 안되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