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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의 약속[안종범의 나라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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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05.22 05:00:00

6.3 조기대선 다가오자 또 장밋빛 공약 남발
재원조달·실행계획 부재, 국민 부담만 키워
공약별 재원 추계, 국책 기관의 검증 필요
공약 사후검증위원회도 만들어 정기 평가를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결국 신뢰를 잃고 주변으로부터 외면당한다. 그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도 회복하기 어렵게 되면서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친구 사이이든 직장 동료이든 비즈니스 관계든 약속은 관계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핵심 자원이다. 이처럼 사적인 관계에서는 그렇게나 중요시하는 약속을 정치인이 다수 국민을 상대로 할 때는 유독 가볍게 여기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공약을 언론 보도나 유세를 통해 접하고도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깊이 검증하지 않거나 쉽게 믿어버린다. 설사 공약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잊히곤 한다. 왜일까. 첫째, 공약의 대상이 ‘다수’이기 때문에 개별 국민이 느끼는 책임감이나 손해는 분산해 체감하기 어렵다. 둘째,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이미 “정치인은 원래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라는 냉소적 인식이 굳어진 탓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치에 대한 기대와 감시를 약화하고 결국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더욱 조장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신뢰수준이 가장 낮은 기관이 국회, 노동조합, 검찰, 중앙정부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누적된 정치 전반에 대한 신뢰의 부재를 의미한다. 공약을 단순한 선거 도구로 전락시킨 정치와 그것을 방관한 유권자의 공동 책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정치인의 약속이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특히 선거 공약은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재정 추계를 동반한 청사진이어야 한다. 2012년 2월 새누리당은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정강·정책’의 명칭을 ‘국민과의 약속’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 등 10대 약속을 제시했다. 그리고 내놓는 선거 공약들이 국민과의 약속 중 어느 항목에 속하는지 명시했고 필요한 재원도 계산해 공개하고 재원조달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했던 ‘공약 가계부’가 그것이다. 이 공약가계부는 그해 12월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도 제시해 검증되면서 공약의 진정성과 실행력을 검증받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다음 선거부터 이 공약가계부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모든 선거에서 유권자 앞에 내놓는 공약 대부분은 구체성과 재원조달 계획이 결여했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워낙 짧은 시간에 치러지는 선거이기는 하지만 재원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각 후보의 10대 공약을 공개하고 있는데 공약을 제대로 검증하기에는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이 너무 떨어져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8세까지 아동수당을 확대한다는 공약이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전국 광역급행철도(GTX) 구축 공약 등은 막대한 재정이 소요됨에도 재원이 얼마 드는가에 대한 구체적 추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재원조달 방안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 후보는 공약마다 “정부 재정지출 구조조정분 및 총수입 증가분 등으로 충당”이라는 문구를 반복하고 있다. 김 후보 역시 “국비 및 지방비 활용, 기존예산 재조정, 공공기금 활용, 세수 증대”라는 문구를 나열하고 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에는 ‘지출을 줄여서 60%, 세입을 늘여서 40%’, 이른바 6대4 원칙이라는 재원조달 원칙을 내세웠는데 지금은 이러한 재원마련 기본방향조차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번 대선 후보들에게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어본다. 적어도 다음 세 가지는 꼭 국민 앞에 약속해줄 것을 제안한다.

첫째, 지금이라도 각 후보는 공약별 재원 소요 추계와 재원조달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최소한 주요 10대 공약 중에서 재원 소요가 큰 것들에 대해서는 재원 소요와 재원조달 방안을 국민 앞에 보여달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 공약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제시해야 한다. 미국 대선에서는 공약 이행을 위해 의회의 예산분석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CBO)로부터 공약 재원에 대한 검토를 받는다. 우리도 국회 예산정책처와 국책 연구기관으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

둘째, 공약 이행을 공식적으로 국민에게 약속하는 ‘서약식’을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공약을 기초로 향후 정책기조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서약식에는 주요 공약과 함께 ‘경제·사회 비전’도 포함해야 한다. 당선 이후 이 서약이 새 정부의 정책기조와 정책평가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셋째, ‘공약 사후검증위원회’를 구성해 공약이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학계·언론·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외부기구로 설치하고 공약 이행률과 변동 사유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평가보고서를 연 1회 발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정기적인 국민검증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2026년 지방선거, 2028년 총선 등 기존 선거를 활용해 국민 의견을 물을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선거가 없는 해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한 여론조사 방식으로 공약이행에 대한 국민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 이렇게 제도화한 감시와 평가 체계가 있어야만 정치인의 공약이 말 잔치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약속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대부분 후보가 친성장과 친기업을 주요 공약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향후 정부의 정책 기조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입법·행정 시도는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하며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한 재정 건전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지금처럼 재원소요 추계와 재원조달 계획 없이 공약을 남발한다면 우리의 나라살림은 성장도 복지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재원대책 없는 무책임한 공약으로 인한 재정압박 때문에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나랏빚(일반정부부채, D2)이 이제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를 넘긴 상황에서 더 이상의 대규모 재정적자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선거가 끝난 뒤 우리 국민이 치루게 될 부담과 고통을 사전에 막으려면 얼마 남지 않은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의 국민과의 약속을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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