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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침투하는 도박, 갈길 먼 예방교육…표준안도 없다

김형환 기자I 2025.04.14 05:50:00

■경찰청·이데일리 공동 연중기획 ‘청소년 도박 뿌리뽑자’
예방교육 경험 81.6%…학생들 “효과 없어”
마약·응급처치도 있는데…도박 예방교육 無
의무교육 확보 법안 발의, 정치권서 계류 중

[이데일리 김형환 이영민 정윤지 기자] 온라인 도박이 교실로 스며들고 있지만 학생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줄 체계적 교육 시스템이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교육부에서 제공하고 있는 ‘학교 안전교육 7대 표준안’에는 도박 예방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지역별 조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도박 교육을 의무화 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좀처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청소년 도박 예방 교육에 전문성을 가진 강사도 부족해 이를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교육부 표준안에 도박 교육 ‘전무’, 방치된 학생들

13일 한국도박문제치유원(예치원)이 발간한 ‘2024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4.3%는 평생 1회 이상 도박을 경험했고, 이 중 19.1%는 지난 6개월 간 도박을 지속적으로 경험했다. 성별로 보면 남학생이 5.8%로 여학생(2.6%)의 2배 이상의 응답을 보였다. 고등학생 경험률은 5%로 중학생(4.3%)이나 초등학생(3.4%)보다 높았다. 즉, 남고생이 도박에 가장 취약하다는 의미다.

아울러 이 조사에서 ‘도박 교육이 효과가 없었다’고 응답한 초등학생은 15.3%에 불과했는데, 고등학생은 40.8%에 달했고, 남학생(31.4%)이 여학생(30.3%)보다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도박 위험도가 높은 학생들에 대한 맞춤형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들을 위한 교육 도박 예방 교육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학교 안전교육 7대 표준안’을 만들어 학교폭력이나 약물 중독 등에 대한 필수 교육을 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도박 예방 교육은 포함되지 않았다. ‘사이버 과의존 예방 교육’에 간접적으로 청소년 도박과 관련한 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있지만, 교육부·학교안전공제중앙회 등이 발간한 교안엔 해당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각 시도교육청은 2018년부터 최근까지 ‘학생 도박 예방교육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우회적으로 도박 예방 교육 근거를 만들었다. 다만 17개 시도교육청 중 도박 예방교육을 의무 배정한 곳은 11곳이었고, 6곳은 의무 교육 시수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아울러 제주·대전·광주·부산(1년 2차시 이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1년 1차시 이상만을 의무화하고 있다. 학교 폭력은 11차시, 약물 예방 교육 6차시를 배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효율적 교육이 어려운 셈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학폭 등 의무 교육을 하느라 도박에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맡았던 박모씨는 “안전교육에 진로교육, 인권교육, 다문화교육 등으로 이미 학사일정이 빡빡한 상황에서 별도의 시간을 따로 빼기 힘든 상황”이라며 “의무로 배정된 교육이 아닌 경우에는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강사 1인당 26.5개교 맡아야…학생들 “효과 없어”

청소년 도박 예방 교육의 효과마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17개 시도교육청은 모두 예치원 센터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제공하거나 예치원 교육자료를 활용해 교사가 도박 교육을 하고 있다. 전국 예치원 산하 센터에 소속된 도박예방 강사는 지난해 기준 464명으로 전국 초중고가 1만 2292개교인 점을 고려할 때 1명당 26.5개교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도박 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마저도 학교폭력·딥페이크 성범죄 등을 더해 ‘위험성’을 알리는 데 그치고 있다.

(그래픽=챗GPT)
학생들은 도박 예방 교육에 효과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에 거주 중인 고1 김모군은 “학교폭력 교육은 상황극 교육도 하고 재밌었던 기억이 나는데 청소년 도박 예방 교육은 어렴풋이 받은 기억만 있다”며 “도박 이야기는 학교폭력만큼 주변에서 쉽게 하는데 선생님들 관심은 그리 크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 중인 고2 하모(18)군은 “그냥 외부 강사가 짧게 PPT를 띄워놓고 왜 도박을 하면 안되는지 설명하거나 영상을 틀어주는 게 전부”라며 “친구들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고 말했다.

교사들 역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청소년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그럴 역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 중학교 교사 A씨는 “1년에 우리가 받아야 할 연수는 학교폭력부터 차별 방지, 성폭력 심지어 응급처치까지 등 셀 수 없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도박 예방 연수까지 받아 효과적인 교육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계적인 도박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한 법안이 발의(박정하 의원 대표 발의)됐지만 탄핵 국면에서 정치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계류된 상태다. 그는 “도박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신설해 체계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청소년 도박 문제는 마약 등 다른 문제와 달리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다 보니 교육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이라며 “교육 의무 시수를 늘리고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예방강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단순히 시수를 늘리는 것이 아닌 범교과적 차원에서 청소년 도박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강지명 경남교육청 사무관(형사법 박사)는 “청소년 도박 교육을 단순히 시수를 만든다면 형식적인 교육에 그칠 것”이라며 “윤리와 기술가정, 국어, 과학, 수학 등 교과 과정에 녹여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수학 확률 수업에 도박과 관련한 내용을 넣어 자연스럽게 ‘도박으로 돈을 따는 것은 힘들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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