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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사회 정책 연구소로 57년의 전통을 보유한 ‘어반 인스티튜트’(Urban Institute) 전문가들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출생률을 높이거나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는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없다고 조언했다. 어반 인스티튜트는 오는 6월 19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이데일리-정책평가연구원(PERI) 스페셜 심포지엄’에서 ‘지역별 인구대책 차별화’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방 고용 책임질 ‘앵커 산업’ 필요…사회 인프라 구축도”
그레고리 액스 조세·소득지원 부소장은 “경제적 요인은 중요하지만 일시적일 수 있다”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개인과 공동체가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존엄성과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율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사례를 보면 비경제적 요인을 간과해 지역 활성화 노력이 실패로 끝난 경우가 있다”며 “지역 주민이 어떤 유형의 투자를 바라는지에 대한 충분한 의견을 반영하지 않거나 기존 주민과 새로 유입된 주민 간 갈등 문제 등이 대표적”이라고 짚었다.
핵심 화두인 출생률 역시 ‘돈’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놨다. 액스 부소장은 “물론 돈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폴란드, 헝가리, 싱가포르, 일본, 핀란드, 프랑스, 그리고 한국조차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다”며 “대부분 세금 공제 같은 금전적 유인책에 집중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는 돈 외에도 시간, 공간,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출산 장려금이나 자녀 세액 공제 혜택은 제공하되 주거·보육·고용 정책 등도 병행해 부모 모두가 가족에게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을 하면서 자녀와 고령 부모를 동시에 돌보는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에 대한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청년이 정착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과 지역 활성화를 위한 정책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성공적인 지역은 기본적인 고용 기반과 수요를 형성해줄 ‘앵커(주요) 산업’ 또는 고용주가 필요하다”며 “산업 기반은 다양한 분야로 구성해 특정 산업 침체 시 지역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창업을 통해서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창업을 촉진하려면 재정적 지원은 물론 규제 준수 절차도 간소화해야 한다”며 “도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낙인찍는 분위기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주거, 교통, 병원, 보육시설, 커뮤니티 공간 등 사회 인프라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새로운 이주자나 주민이 지역에 소속감을 느끼고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학교, 종교기관, 사회단체 등 지역 공동체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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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인스티튜트에서 노동·인간 서비스 및 인구센터에서 연구하고 있는 스티븐 마틴 선임연구원은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또한 성공한 지역의 정책을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닌 젊은 층의 지방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마틴 선임연구원은 “전 세계적·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인구 정책은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다. 현대 국가가 겪는 공통적인 문제 중 하나는 정책의 지속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라며 “인구 정책은 성과를 기다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시민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신뢰를 저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자주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젊은 층의 지방 유입을 유도하는 정책을 세울 때는 막연한 방식이 아닌 과학적이고 수치화 가능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도 짚었다. 그는 “단순히 출생률이 높은 지역을 찾아 그 정책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성공 가능성이 낮다”며 “예를 들어 젊은 성인은 가족, 경력,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지역을 옮기므로 지역 인구 정책은 이런 이동을 방법론적·개념적으로 모두 반영하는 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어반 인스티튜트에서 지역 이주 정책이 출생률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개발 중이라고 부연했다.
마틴 연구원은 이번 포럼에서 △연령별 출생률 △자녀가 없는 젊은 성인들의 국내 이주 패턴 △자녀를 둔 가족들의 국내 이주 패턴 등에 대한 통계학적 지표도 발표할 예정이다. 젊은 성인이 어느 시점에 어디서 가족을 형성하는지 파악해 지역 정책 기획과 우선순위 설정, 현재 시행 중인 정책의 성공 가능 진단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연사 소개
그레고리 액스 어반 인스티튜트 조세 및 소득지원 부소장
미시간대 경제학·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어반 인스티튜트에서 조세 및 소득 지원 부문 부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전에는 의회예산국(CBO) 보건·인적 자원 부서에서 노동·소득보장을 담당했고 정책 분석 관리 협의회 부회장도 맡았다.
스티븐 마틴 선임연구원
메릴랜드대 칼리지파크 파크 캠퍼스에서 사회학 조교수로 재직한 이후 뉴욕대 사회 과학 연구소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어반 인스티튜트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