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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인으로 인해 한국, 미국, 일본 등 대부분 국가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가 전문기관 조사에서 급발진으로 확인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발진 의심 사례에 대해 미국의 경우 도로교통안전청(NHTSA)이 세 차례에 걸쳐 4년 4개월 동안 조사했으나 급발진을 확인하지 못했고 일본에서도 일본자동차연구소(JARI)가 한 차례 2년 8개월 동안 조사했으나 역시 확인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관합동조사반과 자동차안전연구원이 네 차례에 걸쳐 4년 4개월 동안 조사했으나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세계 각국에서 자동차 안전 관련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의 조사에서조차 급발진 원인 규명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대부분 ‘제조물책임법개정안’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제조물에 의한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제조물에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는 책임을 제조사에 부과하고 손해의 증명에 필요한 자료 제출 명령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자 Pick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제조물로 인한 손해 배상책임은 민법상 불법행위 법리에 따라 제조업자 등의 ‘과실’이 요건이었다. 제조물책임법 시행 이후 그 책임 요건은 ‘과실’에서 ‘결함’으로 확대됐지만 그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제 제조물책임법 개정으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법률상 일률적으로 특정 사고와 제조물 결함 간 강력한 인과관계 추정을 인정하려는 것은 아무리 피해자의 입증 부담 경감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과학적 원인 규명이나 사고 발생 예방을 위한 철저한 노력을 무력화하는, 비과학적으로 일을 쉽게 처리하려는 전형이 될 우려가 있다. 나아가 책임 없는 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불공평하고 비이성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편 가장 중립적 국가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NFS)이나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의 조사 결과도 믿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제조사에 입증책임을 부과한들 제조사의 조사 결과나 보고서를 믿을 수 있는 피해자 수용성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급발진이라고 주장한 사고에서 차량 결함을 의심할 만한 사건은 1건도 없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믿어주는 사회적 수용성이 있느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조물책임법 개정은 문제 해결도 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노력의 낭비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 쉽게 가는 법 개정보다는 페달 오조작 방지 카메라나 비상제동장치(AEBS) 혹은 수동 연료 차단(Fuel Cut) 장치 설치 등 사고 예방을 위한 실제 노력을 강화해가는 것이 합리적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