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전쟁과 중국발 공급과잉이 이어지면서 국내 산업공동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공동화(空洞化)는 제조업이 문을 닫거나 밖으로 나가면서 국내 생산시설이 텅 비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배터리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력 업종이 일제히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마당에 정치는 상법 개정안 등 반기업 법률을 양산하고 있다. 재계가 그토록 바라는 주 52시간제 예외 법제화엔 눈을 감았다. 그러잖아도 힘든 기업을 정치가 밖으로 떠미는 격이다.
지난주 현대차그룹은 계열사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를 지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 공장에서 만든 철강 제품을 현대차와 기아의 현지공장에 공급한다. 이렇게 하면 현대차는 관세를 물 필요가 없다. 기업으로선 주어진 환경 아래서 최적의 선택을 한 셈이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 국내 반도체, 배터리 업체들이 잇따라 미국행을 결정한 것도 득실을 따져 냉철하게 판단한 결과다.
공장이 가동을 줄이거나 멈추면 당장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는다. 고용도 쪼그라든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한국이 미국에 공급망을 구축하면 한국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제조를 (해외로) 나가지 말라고 잡을 게 아니라 인공지능(AI)으로 제조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화를 핑계로 기업의 해외 진출을 막는 것은 하책에 불과하다.
공동화를 막으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매력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된다. 정부는 이달 초 50조원 규모의 첨단산업전략기금을 조성해 반도체, AI, 로봇 등 미래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여야 의원들은 기금 설치를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이례적으로 공동발의했다. 지난달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현대차 공장을 찾아 “전략산업 분야에선 ‘국내생산 촉진 지원세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반기업 법률로 기를 꺾지 않는 것이다. 국내 잔류가 더 매력적이면 기업들은 떠밀어도 나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