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지속하는 가운데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핵심 인사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이끌어내고, 한국과 일본 등 주요 교역국과의 협상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트럼프 경제 책사’들의 권력 역학 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이란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인선 단계서부터 기싸움을 벌였던 ‘온건파’ 베센트 재무장관의 입김이 강해지고 ‘강경파’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나 피터 나바로 백악관 수석 무역·제조업 고문의 역할은 축소됐다는 것이다.
관세 키 잡은 베센트…시장 안정제로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베센트 장관이 최근 들어 트럼프 행정부 내 무역 정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베센트 장관은 그동안 관세 보다 감세 등 세제 정책을 주로 이끌었으나 현재 상호관세 시행을 막기 위한 무역 협상가로 전면에 나섰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베센트 장관을 “관세 소동 속에서 금융계에 위안을 주는 존재이자 이성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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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지는 지난 6일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관세 정책은 경기침체 공포를 유발해 뉴욕증시 폭락에 이어 미국 채권 시장이 대규모 투매로 대혼란에 빠졌고, 성공한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베센트 장관은 이것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했다. 바로 “현대 정치·경제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가장 큰 판돈이 걸린 도박”이었다. 그는 플로리다로 달려가 그곳에서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트럼프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해 관세 정책으로 인해 다른 국정과제 이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관세 정책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자 베센트 장관의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설립자 등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거물 기업인들까지 관세 정책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상호관세 발효 13시간 만에 ‘90일 유예’를 결정했다. 베센트 장관의 설득이 빛을 발한 것이다.
역할 축소된 ‘강경파’ 러트닉·나바로
그에 비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정책을 주도하던 러트닉 장관과 나바로 백악관 수석 무역·제조업 고문은 밀려났다는 반응이다. 관세와 무역 의제는 러트닉 장관의 몫이나 현재 주요 교역국과 협상을 주도하고 관세 관련 메시지를 대외적으로 전달하는 이는 베센트 장관이다.
투자은행(IB) 대표 출신인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 소득세가 없고 관세만 있을 때 가장 번영했다”며 관세 그 자체를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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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설계자’ 나바로 고문의 경우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90일 유예’와 관련해 “베센트, 러트닉 등과 대화했다”고 답하면서 나바로 고문은 거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