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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안씨의 귀에 동서의 조카 A(24)씨가 그곳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뜩이나 그는 이번 참사의 사망자 대부분은 20대, 30대라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주변에도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가 있을까 노심초사하던 그였다. 안씨도 A씨를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다. 동서가 어릴 적부터 예쁘고 착한 효녀라고 만날 때마다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자랑했기 때문이다.
참사 당일 A씨는 졸업 후 최근 한 대학병원 간호사로 입사해 축하 파티 겸 친구 3명과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24살 꽃다운 나이로 이태원의 한 길거리에서 숨을 거뒀다. 친구들은 빠져나왔지만, 평소 마른 체격이었던 A씨는 인파 속에서 잠겨 빠져나오지 못했다. 안씨는 A씨가 취직 기념으로 끊어놨던 해외 여행 비행기 티켓을 자랑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동서가 정말 예뻐했다. 특히 효녀였고, 어른들한테 싹싹하게 잘하는 착한 아이였다”며 “졸업하자마자 병원에 입사한다고 신이 났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안씨는 31일 녹사평역 인근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아침 일찍부터 찾았다. 조문하러 빈소에 가면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좀 더 일찍 현장에 가서 응급조치를 했다면, 우연히 쓰러져 있는 조카를 봤더라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안씨는 황망해하는 동서를 볼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같았다.
안씨는 합동분향소에서도 조문하지 못했다. 빈소에 가면 자책감을 못 견딜 것 같아 이곳 분향소까지 찾아온 그지만, 분향소 앞에서도 그는 차마 헌화하고 조문하지 못했다. 눈물이 터져 나와 정신을 못 가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빨리 처치를 했어야 했는데...”라고 혼잣말을 읊조리며 자책했다.
분향소 천막이 걷히고, 추모객들의 조문이 시작됐을 때도 그는 펜스 밖에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휴대전화로 추모객들이 추모하는 분향소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고, 눈물을 흘린다’라며 동서와 A씨에 말해주고 싶었다. 한동안 추모객들의 조문을 지켜본 그는 눈물을 훔치며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데일리 취재진에 “마음이 안 좋아 오늘 분향소 오기 전 다시 그 사고 현장을 가봤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현장과는 다르게 거짓말처럼 적막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안씨는 “밝을 때 가보니 골목이 너무 좁아 보였다. 저기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처치를 하지 못한 내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끝을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