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참혹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선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이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포함한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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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선 외제차 침수, 저쪽선 반지하 사망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선 반지하에 살던 50대 A씨가 침수된 반지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A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고, 공식적으로 장애 등록이 된 건 아니지만 지적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도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거주하던 40대 발달장애인 B씨 등 일가족 3명이 폭우로 집 안에 숨진 채 발견됐다. 10년 전 쯤부터 이곳 반지하에 살았다는 이들은 물이 빠르게 차오르자 수압으로 현관문이 막혀 고립됐다. 이웃과 소방·경찰이 구조 작업을 진행했지만, 참변을 막지 못했다. B씨 가족 역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득층과 달리, 재난·재해의 피해는 저소득층에게 치명적이다. 일각에서는 “부자들은 차를 잃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생명을 잃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10일 오후 1시 기준 피해 차량은 7678대로 피해액은 977억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외제차 피해액은 542억1000만원(2554대)으로 전체 55.5%를 차지했다.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페라리부터 포르셰까지 최고급 외제차들이 침수돼 피해액이 커졌다.
저소득층들은 거의 전부를 잃었다고들 토로한다. 폭우가 내린 동작구의 C씨는 “형이 이 동네 반지하에 살다가 폭우에 잠기면서 우리 집으로 피신 왔다”며 “인명피해는 없지만, 재산 피해가 너무 커서 앞이 캄캄하다”고 했다. 관악구 신림동 일대의 최모(70)씨도 “일대가 거의 모두 잠겼다. 가전제품은 다 못쓰게 됐고, 그나마 있던 차도 폐차해야 한다”며 “남은 게 없다”고 했다.
서초구의 한 다세대 주택이 침수돼 머물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김모(30)씨 가족은 “모든 것이 다 잠겨 앞이 캄캄하다. 구청에 문의는 해놨는데 언제, 얼마나 피해를 복구해줄지는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피해가 워낙 막심해 감당하기 어렵다”며 “조만간 지금보다 더 좁지만, 집값이 저렴한 곳으로 이사할 계획”이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재난이 불평등 반영…정부가 적극 보상·대응해야”
가난한 자를 가장 먼저 덮치는 건 폭우만이 아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감염병인 코로나19 또한 저소득층의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전체 사망자 971명 중 소득 하위 20%인 사망자 수는 322명(33.2%)으로 소득 상위 20% 사망자 166명(17.1%)보다 두 배가량 많다.
소득 하위 10%로 좁혀보면 소득 하위 10%의 사망자 수(199명)는 소득 상위 10% 사망자(93명)의 두 배를 넘어선다. 소득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진 셈이다. 똑같이 감염에 노출돼도 저소득 취약계층일수록 생계 문제 등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못한 까닭이다.
전문가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를 타개해야 해야 한다고 봤다.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재난보험을 국가와 민간이 공동으로 개발해 재난 시 실질적인 보상과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난의 결과는 대부분 불평등을 반영하고 있다”며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저소득층이 재난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보상해야 하고, 무엇보다 재난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