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홍 회장 측이 주식 매매계약 선행조건으로 제시한 외식 사업부 분사와 오너 일가 자리보전 등도 계약서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효력이 없다고 인정했다. 재판이 첫발을 떼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앤코에 유리한 법리적 판단이 나오면서 향후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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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50부(송경근 수석부장판사)는 한앤코가 홍 회장 등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 결정문에서 “홍 회장은 29일 열리는 남양유업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결론 냈다. 그렇지 않으면 홍 회장이 한앤코에 100억원을 지급하라는 명령도 덧붙였다.
법원은 “홍 회장이 계약 해제를 통지한 것은 효력이 없어 주식매매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양측의 주식 매매계약은 한앤코가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홍 회장이 한앤코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는 행위는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더 주목할 점은 결정문에서 홍 회장 측이 매각 결렬사유로 주장한 사유에 대해 법원이 인정할 수 없음을 밝혔다는 것이다.
법원은 “채권자(한앤코)가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하고 부당하게 경영에 간섭했으며 거래 상대방으로서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채무자(남양유업)들이 주장하고 있다”면서도 “채무자들의 자료만으로는 채권자가 부당한 행위를 했다거나 신뢰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이 남양유업이 주장한 매각결렬 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홍 회장 측이 해당 사유를 매각 결렬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으면서 한앤코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지난달 23일 31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하면서 “이번 계약은 한앤코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불평등 계약”이라며 “한앤코는 사전에 서로 합의한 사항을 어기고 부당하게 경영에 간섭하고 계약과 협상 내용을 언론에 밝히며 비밀유지 의무까지 위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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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문에는 홍 회장 측이 계약 선행조건으로 제시한 외식 사업부 분사와 오너 일가 임원진 예우 등에 대한 언급도 담겼다. 법원은 “주식 매매계약 선행조건으로 외식 사업부 분사·오너 일가 예우가 확약 사항이 되기 위해서는 절차와 방법, 조건 등에 대한 상세 합의가 필요하지만 계약서에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채무자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외식 사업부 분사와 일가 임원진 예우에 대한 조항을 선행 조건으로 확약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해당 사항에 대한 양측간 이면 합의 유무와 별개로 한앤코가 남양유업 측 주장을 수용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홍 회장 측은 한앤코의 가처분 신청을 두고 ‘경영 안정화를 방해하는 처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원의 결정은 또 달랐다.
법원은 “현재 6인의 등기이사 가운데 사임계를 제출한 이사는 3인에 불과해 신규 이사 선임이 필요하지 않으며 회사 유지를 위한 (이사 선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소명도 부족하다”며 “임시 주주총회가 단순한 보전적 조치에 불과하고 채권자의 권리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남양유업 입장에서는 아직 법정에 들어서지도 않은 상황에서 코너에 몰린 모습이다. 당장 29일 열릴 예정인 임시주주총회에서 절반이 넘는 홍 회장 지분(51.68%) 행사가 어려운 만큼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본격적인 법리 다툼을 펼쳐야 하는 앞으로의 상황이 더 큰 문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홍 회장 측 입장에서는 매각 결렬 사유 증명을 위한 자료나 증거 제출에 사실상 올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남양유업과 한앤코 모두 대법원까지 장기전을 예상하고 있지만 초반 분위기가 한앤코에 유리하게 조성됐다는 점은 여러모로 녹록지 않다는 평가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재판이 열려야 알겠지만 홍 회장 측 주장에 대해 법원이 인정한 부분이 크게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남양유업 측이 향후 어떤 내용으로 해당 주장을 강화해 나갈 것이냐가 관건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