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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탄탄대로를 걷던 당시 한 검사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수사를 지휘하면서 정권과 반목했다. 이어 ‘추미애-윤석열’ 갈등 사태가 본격화되자 윤석열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로 꼽히던 그는 4차례 연속 좌천되는 수모를 겪었고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돼 후배 검사들에게 수사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와중에도 한 검사장은 정권 주요 인사들과 날카로운 설전을 벌이며 윤석열 사단의 여론전을 주도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법조계는 한 검사장의 거취에 일제히 주목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서울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요직에 배치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고, 당시 한 검사장과 대립한 인물들은 ‘칼바람’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전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한 검사장은 검찰 내 요직을 꿰차는 차원을 넘어 법무행정과 검찰 인사 전반을 주무르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한 장관의 진노가 반영된 듯 이성윤, 이정수 등 ‘추미애 사단’ 인물들은 모조리 한직으로 밀려났고,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윤석열 사단’ 인물들은 다시 중앙 요직으로 불러들였다.
한 장관은 민주당의 ‘검찰수사권박탈(검수완박)’에 대해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명분 없는 야반도주극을 벌이느냐”며 검찰 수사권 회복을 공언하는 동시에 대대적인 권력형비리 수사를 예고했다.
법조계는 특수통 출신 장관이 검찰 관련 현안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이는 기우에 그쳤다. 한 장관은 취임 직후 △촉법소년 연령 기준 하향 △이민청 설치 추진 △교정시설 인권 향상 △청년 빛 대물림 방지 △스토킹범죄자 전자장치 부착 등 민생과 직결되면서도 국민적 요구가 높았던 정책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며 법무행정가로서의 역량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 △합동수사단 추가 설치 △검찰 조직개편 △대검 정보관리담당관실 활성화 등 검찰 수사권 회복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면서 보수 지지층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야당이 반발할 때마다 한 장관은 “왜 검찰이 마약·깡패 수사를 못하게 막느냐”고 반박했고, 실제로 최근 몇년간 폭증한 마약 범죄 통계가 이 반박에 설득력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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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 장관이 만사형통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당초 검수완박 무효화가 핵심 과제였던 한 장관은 직접 헌법재판소에 나가 변론하기도 했지만, 검수완박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헌재 결정이 나오면서 질풍 같았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한 장관 탄핵론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또 한 장관은 “전 정권의 인사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 “지탄이 커지면 제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를 야심차게 강행했다. 그러나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재산 누락,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의 아들 학폭, 송옥렬 공정위원장 후보자의 성희롱 발언 등 인사 논란이 줄줄이 터지면서 국민적 실망을 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책임론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 장관은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연단에 서서 “범죄의 정점·최대수혜자 빼고 실무자만 구속된 건 형평에 안 맞다”며 이 대표를 맹폭했지만 결국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헌정사상 최초 ‘제1 야당 대표 구속’을 자신하던 한 장관과 검찰은 체면을 제대로 구겼고 수세에 몰려있던 야권은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이같은 실수와 구설에도 한 장관의 범보수 대권 주자 1위 지위는 단단하게 굳어졌다. 법정에서 “검사로서 이 이상의 불명예는 없다”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 지 불과 2년 만이다. 앞길이 꽉 막혀 있던 ‘좌천 검사’가 ‘스타 장관’으로 이름을 날리는 역전극을 선보인 가운데, 이번엔 정계 진출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을지 법조계와 정치계의 관심이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