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發 디지털 성범죄, 국제 공조에 거는 기대[별별법]

성주원 기자I 2024.11.16 08:30:00

■다양한 주제의 법조계 이야기
협약 가입으로 해외플랫폼 수사 협조 강화 기대
24시간 핫라인·데이터 보전명령으로 증거 확보

황규호 변호사. 법무법인 디엘지 제공.
[황규호 법무법인 디엘지 파트너변호사·공학박사] 최근 대학가의 딥페이크 사건과 단체 대화방을 통한 성범죄, 10대들의 집단 딥페이크 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발생한 딥페이크 성범죄는 964건에 달하며, 피의자의 73.6%가 10대일 정도로 저연령화 현상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범죄의 대부분이 텔레그램 등 해외 기반 SNS를 통해 이뤄지면서 수사기관의 디지털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2022년 10월 ‘사이버범죄협약’(일명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의향서를 제출했고, 작년 6월 유럽평의회로부터 가입 초청을 받았다. 부다페스트 협약은 2001년 유럽평의회가 제정한 최초의 사이버범죄 관련 국제조약으로,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등 76개국이 가입해 있다.

협약은 최근 문제가 되는 디지털 범죄 대응에 특히 유용한 수단들을 제공한다. 우선 가입국 간 ‘24/7 핫라인’을 구축해 신속한 수사공조가 가능하다. 디지털 증거는 일정 기간 보관 후 자동 삭제되거나 변경될 수 있어 신속한 확보가 필수적인데, 협약은 가입국간 데이터 보전명령(최대 90일)을 통해 증거인멸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실시간 트래픽 데이터 수집, 저장된 데이터 수색·압수 등 다양한 수사협력 수단도 규정하고 있다.

특히 협약 제29조는 디지털 증거의 신속한 보전을 위한 상세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한 국가가 다른 가입국에 데이터 보전을 요청하면, 요청받은 국가는 해당 데이터가 삭제되거나 변경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수사 초기에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제32조는 공개된 저장데이터에 대한 초국경적 접근도 허용하고 있어, 수사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협약 제18조는 가입국의 수사기관이 자국 내 서비스제공자에게 가입자 정보와 트래픽 데이터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는 해외 IT 기업으로부터 범죄 관련 정보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협약은 또한 불법접속, 시스템 방해, 아동포르노그래피 등 주요 사이버범죄 유형을 상세히 규정하고, 가입국들이 이를 범죄화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국가간 처벌 기준의 차이로 인한 수사공조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특히 2003년 채택된 제1추가의정서는 컴퓨터시스템을 통한 인종차별적 행위의 처벌을, 2022년 채택된 제2추가의정서는 전자증거 수집을 위한 국제협력 강화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협약 가입을 위해서는 국내법 정비도 필요하다. 특히 데이터 보전명령 제도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한 협약 제15조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수사기관의 강제처분과 정보주체의 기본권 보호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부다페스트 협약의 가입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수사공조의 틀을 넘어선다. 무엇보다 글로벌 IT 기업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협상력이 강화될 것이다. 76개국이 가입한 국제협약의 틀 안에서 기업들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게 되면서 지금까지 ‘역외 서버’ 등을 이유로 수사협조에 소극적이었던 해외 플랫폼들의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협약 가입은 또한 국내 법제도 선진화의 기회가 될 것이다. 디지털 증거의 보전과 수집에 관한 국제 기준을 수용하면서, 수사의 신속성과 기본권 보호라는 두 가치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우리 형사사법 체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국제 공조의 패러다임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수사공조가 국가 대 국가의 외교적 협력에 의존했다면, 협약은 수사기관간 직접적이고 신속한 공조를 가능케 한다. 범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전통적 공조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범죄의 가장 큰 특징은 초국경성이다. 국내에서 발생한 디지털 범죄의 증거가 미국의 서버에 저장돼 있고, 가해자는 제3국의 IP를 통해 범행을 저지르는 식이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디지털 증거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국가간 경계를 넘어선 효과적인 공조체계가 필수적이다. 부다페스트 협약은 바로 이러한 초국경적 디지털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도적 해답이다. 24시간 핫라인 구축, 신속한 데이터 보전, 실시간 증거수집 등 협약이 제공하는 수사 도구들은 범죄에 대한 법망을 좁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국제 공조의 틀을 실질적인 법집행 역량 강화로 연결시킴으로써,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위협으로부터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는 든든한 법치의 토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황규호 변호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미국 카네기멜론대 기계공학 박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문연구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인공지능 법제연구단 자문위원 △(현)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 △(현)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정보규제심사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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