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란의 컬러인문학]⑩치명적 매력을 간직한 색(色)

박철근 기자I 2016.05.13 08:54:02
[김향란 삼화페인트 컬러디자인센터장]
현존하는 색중에서 가장 신비로우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색으로 치명적 매력을 가진 색은 어떤 색일까? 아마도 갸우뚱 거릴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신비롭다라는 말 속에서 뇌리를 스쳐간 것은 보라색일테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색이라치면 마젠타 혹은 빨강을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자연 그 자체의 색으로 매력을 간직한다라는 서술을 한다면 그제서야 그 색이야? 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우리가 보는 초록은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이고, 이미 많은 제품 속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져 왔기 때문에 앞의 서술이 그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여길 것이다.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중국의 상(商)시대 중기에 발명된 도자기 유약 기법을 이용해 만든 청자인 비색 청자는 신비로운 초록색으로 유리질 표면에 자연스럽게 표현된 유약의 깊이감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물론 이 비색청자는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고려청자가 그것이다. 중국에서 영향을 받아 고려로 넘어와 고려청자로 불렸고 ‘고려비색 천하제일’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색감에 있어서는 우위에 있었다.

중국의 비색청자가 화려하고 독창적인 맛을 낸다면 우리의 고려청자는 소박하면서 귀품있고, 인간적인 내면의 빛과 선조들의 혼이 맑고 깊은 푸른색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중국과 우리의 차이는 또 있다. 고려 청자의 유색을 비취옥색에 견주어 비색(翡色)이라고 하고, 이때 ‘비색(翡色)의 비는 비취옥색을, 의미상 한자는 물총새 비(翡)자를 써서 새의 등에 있는 광택이 도는 청록색을 그려냈다. 자연물이 담고 있는 유생물의 색을 무생물에 옮겨놓음으로서 대상을 형성하는 물질적인 것을 색으로 형태화한 것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 비색의 비는 숨길비(秘)자를 쓰고 있다. 이 신비로운 색은 신분을 구분하고 신하나 서민들은 사용할 수 없는 통제된 색으로 궁중의 기물에만 사용하는 특정 계층에게만 허락된 색이었다. 때문에 더욱 화려하고 독창적인 자태일 수 밖에 없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형언할 수 없는 자태를 뽐내고 있는 비색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고, 우리 고려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자긍심이었다. 중국의 불교회화, 그리고 도자기에서 보여졌던 신비스러운 비치, 인도의 신비주의와 페르시아의 시를 통해서 초록색은 유럽의 낭만주의와 만나 더 많은 인기를 누렸고, 이 시기의 화가들은 이 색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그 색이 가진 위험을 미쳐 깨닫지 못했던 불운을 안고 있다.

18세기 말 스웨덴의 화학자로 활동하였던 칼 빌헬름 셀레(Carl Wilhelm Scheele)는 1775년 비소로 실험을 하다 아주 우연하게 눈을 뗄수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초록을 발견한다. 이후 구리와 비소를 재료로 초록색 안료를 발명하고 특허를 신청해 셀레그린(Scheele’s Green)이라는 이름으로 제조했다. 그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었음을 그의 과학자 친구를 통해 전해진다. 셀레는 그 안료를 사용하는데 있어 독성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고 전했고, 그토록 기다려왔던 아름다운 초록색을 사용하는 많은 제조업자들은 비소의 독성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림뿐아니라 벽지에도 자주 사용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오랜기간 들뜬 마음으로 벽에 독을 붙였고, 시간이 흐른 후 비소 안료를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검출된 독성과의 미스터리로 연관짓기에 이른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나폴레옹은 유독 초록색을 흠모했다. 그의 방을 온통 초록색으로 장식할 정도였으니 그 애착이 어느정도인지는 유추되는 바이다. 51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나폴레옹을 둘러싼 많은 의혹들은 그로부터 140년이 지난 1960년에서야 밝혀졌다. 보관되어 있던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분석을 통해 독성이 있는 비소가 검출됐고 나폴레옹의 침실에 사용된 벽지 조각의 성분 분석을 통해 실마리를 찾기에 이르렀다.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뿐만 아니라 손톱에서의 다량의 비소가, 초록색카펫과 초록색가구, 초록색벽지, 초록색가죽 결국 만성적인 비소독에 중독된 것이다.

이쯤되면 초록색이 왜 치명적인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리라. 18세기 많은 화가들을 통해 사용된 초록색은 골머리를 섞게 하였지만 이전까지 낼 수 없는 색의 한계성을 극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기에 흠모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현재까지 발견된 초록색 그리고 사라진 초록색을 보면 수백가지가 되며, 각 나라마다 사용하는 명칭도 다르다. 천연안료 이외 현재는 합성된 안료로 많은 초록색의 빛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가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초록색을 필요로 할까. 그들은 광채가 나는 그리고 둔탁함을 표현할 수 있는 두 종류 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합성된 안료들은 과거에 빛내지 못했던 많은 초록의 빛을 연출하고 있다.

초록색은 참으로 오랜기간동안 자연의 신비로움을 축복하며,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제는 기술의 발전에 의해 서양에서 동양으로 유입되고 끊임없이 다양한 안료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많은 사람들은 자연의 빛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유해하지 않은 친환경적인 안료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에 이르러 자연친화적인 상품이나 가장 많은 트렌드를 담고 있는 ECO에 대한 니즈에 있어 초록색은 그것을 대표하는 상징색으로 사용되며, 자연과 일치함에 있어 가장 친화적인 색임에는 반론할 여지가 없다. 이 봄날 싱그럽게 대지를 덮고 있는 초록색의 물결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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