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가석방의 아이러니’는 유기형과 무기형의 가석방 요건이 각각 다른데서 온다. 김태현 같은 무기형 범죄자의 가석방 요건을 장기 유기형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개정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지난 12일 김태현은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1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틀 뒤 조주빈은 범죄단체조직,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2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둘에게는 아직 머나 먼 얘기지만, 현행법상 사형수을 제외한 무기징역과 유기징역수는 모두 가석방 대상에 포함된다. 가석방은 ‘징역이나 금고형의 집행 중에 있는 사람이 행상이 양호해 뉘우침이 뚜렷할 경우’ 형기가 만료되기 전에 조건부로 석방하는 제도다. 형법 제72조에 따르면 무기형은 2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이 가능하다.
여기서 가석방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42년 유기형을 받은 조주빈은 32년 복역 후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유기수는 3분의 1 이상을 살더라도 잔여 형기가 10년을 초과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조주빈은 총 형기인 42년의 3분의 1인 14년을 살아도, 남은 형기(28년)가 10년을 초과하기 때문에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잔여 형기가 10년이 되는 32년까지 무조건 살아야 가석방을 노릴 수 있다.
반면, 김태현은 1심 판결대로 무기징역이 확정된다면 20년 후 가석방 대상자가 된다. 김태현이 조주빈보다 12년 더 빨리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징역 70년형’ 등 장기 유기형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조주빈처럼 40년이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러한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2010년 개정 형법에 따라 현재 국내 징역형 상한선은 30년까지 가능하고, 형이 가중되는 경우엔 최대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개정 전 상한선이 15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장기 유기수의 가석방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형법상 가석방 요건 조항은 지난해까지 지속 개정됐지만 가석방 기간은 1995년 신설된 이후로 개정되지 않았다. 당시엔 유기형 상한선이 15년 남짓이었기에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면 일반적으로 남은 형기가 10년을 넘지 않았던 것이다. 상한선이 높아진 이후 해당 조항이 개정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높아진 유기형 상한선 기준에 맞춰 가석방 대상 기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상식적으로 무기징역이 유기징역보다 강한 처벌인데, 의도치 않게 무기징역을 받는 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징역의 가석방 요건을 적어도 유기징역만큼은 복역한 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3명 연속 살인한 김태현은 사람을 죽였는데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석방을 전제로 본다면 김태현이 훨씬 더 유리한 판단에 있는 건 맞다”며 “조주빈은 무조건 32년을 살아야 하는데 현행법상 김태현에게 더 이득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0년이 넘는 선고를 전제로 하면 무기형의 가석방 조건을 유기형의 상한선에 맞춰 손봐야 한다”며 “무기형의 가석방 기간도 45년까지로 설정해 적어도 무기형이 유기형보다는 높도록 해야 한다”며 법적 보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주빈의 42년형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드문 선고였다. 장기 유기형이 늘면서 가석방 조항의 일관성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러나 가석방 대상 기간을 채우더라도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조주빈이나 김태현은 사회 분위기상 시간이 지나도 가석방이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