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필리핀) 가사관리사’에 선발돼 지난 6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글로리(32)씨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필리핀에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들을 이같이 밝혔다. 한국에선 내국인과 같은 최저임금(9860원)과 4대 사회보험 등이 적용돼 홍콩·싱가포르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단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서울시가 다음달 3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홍콩·싱가포르 등에서 일할 경우 임금이 월 60만~80만원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이에 비해 서울에선 종일제(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는 206만원, 최소 보장 업무시간(주 30시간)기준 155만원 가량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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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시 교통비로 6만원 안팎이 들고 숙박비(월 45만원 수준)와 하루 세끼 식사 등을 더하면 한 달에 최소 60만~70만원 지출이 예상된다. 종일제로 근무하면 필수 지출을 제외하고도 100만원 이상을 손에 쥘 수 있지만, 종일제 선택 비율은 전체 40% 정도에 그쳤다. 이에 주 30시간 정도를 근무할 상당수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필수 지출을 빼면 홍콩·싱가포르에서 받는 급여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야간 근무 등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적다.
선정 가정 입장에서도 주 이용층인 맞벌이가정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단 지적이 나온다. 시범사업 선정가정 중 95.5%(150가정)에 달하는 맞벌이가정은 출근과 함께 아이들은 어린이집 등에 맡기고 퇴근길에 데려오는 육아 형태다. 따라서 도움이 필요한 시간대는 아이들이 하원하는 오후 2~4시부터 부모가 퇴근해 집에 오는 오후 6~8시 사이, 육아 공백이 생기는 4시간 정도다. 8시간 종일제 근무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려면 가사관리사가 아이들이 집에 없는 시간에 다른 집안일을 추가로 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번 시범사업에선 가사관리사에게 육아와 연관되지 않는 청소와 빨래, 식사 준비 등 일상적인 가사 업무를 시킬 수 없다. 그런데도 8시간 종일제 이용 가정은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572만 9913원)의 40%가 넘는 238만원을 매달 내야 한다. 고소득층이 아니면 가사관리사 서비스를 신청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범사업 신청가정의 절반이 소위 ‘강남4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에 집중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서비스 이용 비용은 낮추고 가사관리사들이 일할 기회는 확대해 수익은 보장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을 적용하더라도 숙식을 제공하면 월 100만원 수준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등 선택지도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