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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23일. 호흡에 곤란을 일으켰던 마리스카를 돕기 위해 한씨는 심폐소생술을 진행하던 대니얼의 부탁을 받아 이웃에 도움을 청했다. 마리스카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현지 경찰은 살인죄로 보고 대니얼을 체포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씨는 경찰 조사에 협조하면서도 강사 자격증을 땄고 9월 별다른 제지없이 온두라스를 떠나 이집트에서 다이빙 강사로 활동했다.
이집트에서 갑작스럽게 구금됐던 한씨는 온두라스를 떠난 지 1년 만에 다시 송환됐다. 온두라스 경찰은 한씨를 대니얼과 살해 공범으로 의심했다. 다만 대니얼은 보석이던 상태에서 온두라스를 출국한 뒤였다.
한씨는 무죄를 호소했지만 온두라스 사법당국의 수사과정은 강압적이었다. 12월 가석방됐지만 현지 한인교회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한씨의 안타까운 사건이 인터넷 등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한씨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2000여명이 가입한 후원카페가 개설됐고 언론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외교부의 초기 대응이 부족했다는 질타 속에 정부가 전문가팀을 현지 파견하는 등 조치가 뒤따랐다.
정부 대표단이 현지에 파견되면서 한씨에게도 한줄기 서광이 비췄다. 마리스카가 후송된 병원에서 만든 진료 기록에 무죄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시신을 부검한 온두라스 수사 당국은 사인으로 ‘목이 졸린 질식사’를 꼽으며 시신에 남았던 외상을 한씨의 살해 혐의 근거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 상흔이 응급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진료 기록이 남아 있었다.
2010년 10월17일 1심 재판에서 온두라스 법원은 무죄를 판시했다. 판사 3명 중 과반(2명)의 의견을 기초로 판결을 내리는 온두라스 법원에서 한씨는 판사 전원 만장일치로 무죄를 판결받았다. 이후 온두라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1년 5개월의 긴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