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두세배 껑충 불가피”…표준감사시간 반발하는 기업들

이명철 기자I 2019.02.11 18:22:11

제정안 발표 후 “이해관계자 입장 반영 안돼” 비판
코스닥社 “확정 안됐는데 회계법인 보수 두배 인상”
금융당국 사실상 無간섭…최종안 확정까지 진통 예상

최중경(왼쪽 사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11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열린 표준감사시간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공인회계사회 제공]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순이익을 15억원 기록하는 회사인데 감사비용으로만 2억~3억원 가량을 쓰게 생겼다. 표준감사시간이 정말 회계 투명성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표준감사시간을 마련하기 위한 한국공인회계사회 공청회에 참석한 코스닥기업 제이티(089790)의 고병욱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발언이다. 그는 “표준감사시간 확정도 안됐는데 감사인이 올해 감사보수를 지난해 6500만원보다 두 배 오른 1억3000만원을 제안했다”며 “표준감사시간의 목적이 회계 투명성을 위한 것이라면 감사보수와의 연계성을 끊어달라”고 요구했다.

표준감사시간이 초안보다 완화된 수준에서 제시됐지만, 감사비 등 부담 증가를 토로하는 기업들의 반발은 지속되고 있다. 표준감사시간이 금융 당국의 묵인 속에 회계 단체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책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정을 맡은 한국공인회계사회 역시 정당하고 객관적인 절차를 걸쳐 검증을 받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논쟁은 지속될 전망이다.

◇ “평균 이상 상승폭 속출…보완책 내놔야”

제정안에 따르면 기업들의 표준감사시간은 개별추정과 통계모형 등을 반영해 산정하게 된다. 연결 자산 5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인 그룹1은 규모를 감안해 모두 개별추정, 각 감사인과 회사에 별도로 통지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7~9그룹은 통계모형만 적용한다. 표준감사시간을 적용할 경우 기업들의 평균 감사시간은 현재보다 73%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당장 감사시간이 늘어나면 기업 부담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송창봉 LG전자 회계팀장은 “그룹1에 속해 별도로 통보받은 표준감사시간에 따르면 내부회계관리제도까지 감안해 현재보다 70%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며 “지금도 감사시간이 2만4000시간 이상이고 감사인들도 상주하다시피 하는데 감사비와 감사 대응 시간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공회가 제시한 업종별 평균치(2그룹, 자산 2조5000억~3조원, 도소매업)를 감안했을 때 코스닥 대장주인 셀트리온헬스케어(091990)의 표준감사시간은 5524시간으로 나타났다. 2017년 이 회사의 감사시간은 3789시간으로 이보다 약 46% 늘어나는 셈이다. 2017년 감사보수(2억6500만원)를 단순 비교할 경우 1억2000만원 가량 증가한 3억8634만원으로 추산됐다.

그룹3에서 평균 표준감사시간이 가장 높은 업종은 건설업이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자산 1조3400억원으로 그룹3에 포함되는 계룡건설(013580)산업은 3121시간으로 2017년(2472시간)대비 26%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이 기업은 2017년 감사인 지정 조치를 받아 예년 수준 이상의 감사시간이 소요됐음에도 더 많은 감사시간이 투입돼야 하는 것이다.

평균 상승폭을 웃도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기업들의 주장도 이어졌다. 고병욱 상무는 “회사 지난해 감사시간이 492시간인데 (제정안에 따라) 계산하면 1700시간이 넘게 되고 다른 기업들도 200~300% 되는 경우가 숱하다”며 “평균 이상으로 과도하게 늘어나는 기업은 상한선을 정하는 등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비용 지불측 입장은 나몰라…갑질 당하는 중”

특히 기업들은 표준감사시간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감사 대상, 특히 중소기업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비상장 기업인 윤장혁 화일전자 대표는 “7~9그룹에 속하는 다른 기업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지 감사시간과 감사보수는 얼마나 늘어나는지 모르고 있다”며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반영하라고 했는데 비용을 지불해야 할 회사 입장이 충분히 설명되고 반영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외부감사법 개정을 주도한 금융위원회는 주요 제도인 표준감사시간 제정을 한공회에 맡겨놓은 후 공청회에도 참석하지 않는 등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청회에서 만난 한 회계사는 “금융위에서는 한공회가 심의위원회와 공청회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표준감사시간을 제정하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기업단체 관계자는 “금융위에서도 한공회가 독자적으로 표준감사시간을 처리하면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까지 기업이 감사인에게 갑질을 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오히려 기업이 갑질을 당하는 분위기”라고 하소연했다.

행사에 참석한 코스닥 상장사 CFO는 “금융당국이 왜 회계사들의 모임인 한공회에 표준감사시간 제정을 맡겼는지도 궁금하다”며 “감사를 해야 하는 회계사들이 감사시간을 정하도록 한 이해 상충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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